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특파원 칼럼]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고요? / 조기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조기원

도쿄 특파원

“정부는 ‘징용’이 아닌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고 말씀드리고 있다. 당시 국가총동원법하 국민징용령에는 모집과 관 알선, 징용이 있었다. 실제 이번 재판에서 원고는 모집에 응했다고 했다는 점에서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지난 1일 일본 국회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 정부가 그동안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사용해오던 ‘징용공’이라는 표현 대신에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대법원이 지난달 30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한 다다음 날이다. 일본 정부는 용어를 바꿔서 강제동원 문제를 희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의 발언 이후 문서에서 ‘징용공’이라는 표현을 일제히 지우고 있다. 15일 서울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이 한국 진출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연 관련 설명회에서도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고 표현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조선인들에게는 1944년부터 대상을 특정해 징용영장을 발부하는 방식이 사용됐으니 그 이전 동원은 강제가 아니라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는 강제동원의 본질을 흐리는 발언이다. 당시 ‘모집’과 ‘관 알선’에 의한 동원도 사실상 조선총독부의 행정력이 동원된 강제적인 것이었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수집한 증언을 봐도, 겉으로 ‘모집’ 형태를 취한 경우에도 조선총독부의 행정력을 동원한 각종 강제와 강압적 방법이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원된 이들은 일본 기업의 혹독한 노무관리를 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렸다. 또 각종 보험과 적금 가입이 의무화돼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1938년 이후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동원된 이들을 모두 강제동원 피해자로 규정한다.

일본 전문가들도 아베 총리의 발언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조선인 강제연행>이라는 책을 쓴 도노무라 마사루 도쿄대 교수는 지난 6일 자신의 누리집에 “‘징용공’ 용어는 잘못인가, 적절한가?”라는 글을 올렸다. 도노무라 교수는 “아베 총리는 신일철주금에서 일한 한국인 원고들을 ‘징용공’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라고 지적했다. 도노무라 교수는 “징용은 국민징용령 절차에 따라 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외에도 (징용 관련) 법령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1943년 12월에 시행된 군수회사 징용규칙이 있다. 이는 지정된 군수회사와 군수공장에서는 (이미 일하고 있는) 종업원 전체를 징용된 것으로 간주했다. 일본제철(현재의 신일철주금)도 이런 지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원고들은 어느 시점에서 이미 ‘징용공’이 된 것”이라고 했다.

또 도노무라 교수는 “일본이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전시 노무 동원에는 국가총동원법에 의한 징용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국민징용령에 의한 징용 형식이 아닌 동원)이 피해가 더 경미했던 것만도 아니다. 노동자 확보를 위한 강제성과 폭력성에는 차이가 특별히 인정되지 않는다”며 “따라서 전시 노무 동원 대상이 된 조선인을 ‘징용공’이라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강제동원 피해자, 전시동원 피해자 또는 생략해서 동원 피해자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5일 일본 변호사 100여명은 강제징용 피해 문제의 본질은 인권 침해라는 지적을 했다. 말장난 같은 용어 사용으로 본질을 흐리려는 아베 정부의 태도는 씁쓸하기 그지없다. garden@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