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가 위기를 겪던 당시는 한국 자동차가 승승장구하며 신흥 강자로 부상하던 시절이었다. 현대·기아차는 도요타가 밀려난 시장을 잠식하며 판매량을 늘렸고 2014년엔 글로벌 '빅 5'에 진입했다. 금융 위기 직전 2조원이던 현대·기아차 영업이익은 2012년 12조원으로 불어났고 영업이익률은 11.4%까지 치솟았다. 도요타마저 따라잡을 기세였지만 한국차의 약진은 오래가지 못하고 2015년을 정점으로 급속한 하락세로 돌아섰다. 현대차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1.2%로, 도요타의 7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한때 801만 대까지 올라갔던 현대차의 생산 대수는 750여만 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10년 사이 두 나라 자동차 산업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도요타의 부활은 노사정(勞使政) 3자가 각자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한 결과다. 경영진은 생산 공정과 조직을 혁신해 품질을 높였다. SUV로 넘어간 미국 시장 트렌드에 신속하게 대응했다. 도요타 노조는 56년 무파업 전통을 이어가며 4년간 자발적 임금 동결을 선언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엔저(低) 유도로 일본차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주었다. 아베 총리는 세일즈 외교로 해외 시장의 애로를 뚫어주었다.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노력들이 쌓여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졌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반대로 갔다. 경영진은 기술과 품질 혁신, 시장 트렌드 대응에 실패했다. 부동산 매입에 10조원을 쓰기도 했다. 강성 귀족 노조는 끝없는 투쟁의 자해(自害)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수시로 벌어지는 파업 때문에 최근 5년간 현대차가 겪은 생산 차질만 7조원이 넘는다. 정부는 거대 노조의 기득권을 줄이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개혁할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한국 완성차 5사의 지난해 평균 임금은 9072만원으로, 도요타의 8400만원보다 높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도 12%에 달해, 도요타의 2배를 넘는다. 그런데도 생산성은 글로벌 최저 수준이다. 고비용인데 저효율인 산업이 살아남을수는 없다. 이것이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한국 자동차 위기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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