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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일사일언] 책이 전부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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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호영 한양대 프랑스학과 교수


"지금은 책을 읽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뭐든 시작해보고 도전해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청년은 적잖이 당황했다.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맞이하던 그녀가 책을 권해달라는 부탁을 단호한 어투로 거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점 주인이 책을 읽지 말라니. 그는 당황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서둘러 서점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그 후 청년의 표정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서점 주인으로서 필요 이상의 간섭을 했다는 자책이 따라다녔다. 청년은 매일 들르는 단골손님 중 하나였지만, 어느 날부터 그녀는 그가 책에 파묻혀 세상으로 나오기 싫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취업을 알아볼 나이가 훨씬 지났는데도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책밖에 없어 보였다. 그녀는 막냇동생뻘 되는 그의 앞날이 걱정되기 시작했고,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훈수를 두고 말았다. 그녀 역시 책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삶이 먼저이지 책이 먼저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달이 흘러갔고 계절도 바뀌었다. 그 사이에도, 이 작은 동네 서점에는 매일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책을 매개로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어떤 이들은 내밀한 책들의 공간에서 무언가 비밀스러운 지혜를 찾아냈고, 어떤 이들은 작지만 소중한 위로의 언어를 얻어 문을 나섰다. 밤마다 노란 불빛으로 골목을 밝히는 서점 덕분에, 오래된 동네는 추운 계절이 와도 따뜻한 온기를 잃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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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가을 저녁, 몇 달 동안 자취를 감췄던 청년이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고는 주인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저,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휴식 시간에 읽을 책 좀 권해주시겠어요?" 그녀는 웃으며 천천히 둘러보라 말하고는 차를 끓이러 갔다.





[김호영 한양대 프랑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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