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포럼에서 ‘용감해지는 법’ 주제로 연설
“사람들은 강력한 진실에 익숙하지 않다”
“페미니즘은 남녀 대결 구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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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을 처음으로 폭로해 할리우드와 전세계의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촉발시킨 배우 겸 감독 로즈 맥가원이 한국을 찾았다. ‘어떻게 용감해질 것인가’라는 주제로 2일 에스비에스 디(D)포럼에서 연사로 나서는 그를 1일 서면으로 먼저 만났다.
애초엔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말을 나눌 예정이었다. 하지만 맥가원의 매니저는 조심스러워했다. “그때 일을 상기할 때마다 맥가원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야 해요. 이틀 연속 열변을 토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사진과 동영상으로 만난 맥가원의 모습이 너무도 씩씩해 잊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사회 운동가이기 전에 피해자였다. 그 역시 인터뷰 답변에서 “목소리를 낸다고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강인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며 “힘들고 격동적인 한해였지만 나는 훨씬 더 강해졌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스>가 와인스틴의 성추문 사건을 보도하면서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와인스틴의 성폭력은 30년간 지속됐지만 누구도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피해자”라고 입을 연 이가 맥가원이다. 그는 23살이던 1997년 와인스틴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그의 용기에 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90여명이 피해 사실을 밝혔고, 성폭력 고발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이듬해 한국에 밀려온 미투 물결도 어찌보면 맥가원으로부터 비롯된 셈이다. 그는 “실명으로 ‘내가 피해자’라고 밝히지 않았다면, 모든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용기에 미투 이후 지난 1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할리우드에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통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배우들은 영화 촬영장에서 더 안전하다고 느끼고 (성차별 등) ‘원래 그런 것’들을 더이상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 한국 문화예술계에 끼친 변화도 컸다. 김수희 연출가를 시작으로 #미투가 쏟아지며 이윤택 연출, 김기덕 감독 등 수십년간 성폭력을 휘두른 이들이 호명됐다. 여성 배우들의 인권 보호 등 촬영과정에서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촬영장마다 성폭력 예방 교육도 실시됐다. 맥가원은 미투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되어 영향을 미친 것에 대해 “이 논의가 이렇게 진행된 과정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것은 세계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세계적인 문제다. 미투 운동에 참여해 ‘노'라고 단호하게 말한 사람들 모두 매우 자랑스럽다.”
맥가원은 미투 운동 촉발 전부터 남녀차별 등 할리우드의 잘못된 관행을 꼬집어 왔다. 지난 2015년 6월 한 영화사의 여배우 캐스팅 공고문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스엔에스)에 공개하며 비판한 것이 시작이다. ‘가슴골이 보이도록 몸에 딱 달라붙는 탱크톱을 입고 오라’는 공고문을 공개하며 이후 “너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에 화가 났다”고 밝혔다. 2015년 11월에는 할리우드의 여성 상품화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삭발한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도 올렸다. 그는 “할리우드는 자유의 상징으로 세계에 제품을 팔지만 정작 정직한 곳은 아니었다. 문제는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힘센 사람들, 즉 부유한 남자들의 세계관을 반영한 제품이 세상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위험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1992년 영화 <원시 틴에이저>로 데뷔한 그는 영화 <스크림>에선 살인마에게 죽는 10대 소녀, 드라마 <참드>에서는 현대판 마녀, 영화 <플래닛 테러>에선 최종병기 여전사를 연기했다. 극중 캐릭터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여배우’였던 그도 점점 할리우드 산업에 환멸을 느끼고 부당함을 고발하는 여전사로 바뀌었다. 그가 할리우드에 만연한 성 차별주의를 자각하게 된 것은 데뷔 초반 한 패션지 화보 촬영에서 과한 요구를 받으면서다. “나는 경력 시작부터 불평등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나를 우울하게 하고 화나게 만들었다. 나는 더이상 학대자들이 보상을 받는 불공평한 세상에 살 수 없었다. 멈추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누구도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사회에서 ‘노’라고 말하는 대가는 컸다. 2015년 에스엔에스로 할리우드의 부당한 관행을 지적한 이후 소속사에서 해고됐고, 이후 여성 인권 등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캐스팅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용감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의를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종종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지적하는 나의 열정을 잘못 해석한다. 그들은 특히 여성이 제기하는 강력한 진실에 익숙하지 않다. 나는 우리가 더 건강해지고 그러면서 치유되는 것에 열정을 지닌 것이다”라고 말했다.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지만 여전히 갈길은 멀어 보인다. 와인스틴처럼 가해자들은 대부분 혐의를 부인하고, 법적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이윤택 연출이 징역 6년 실형을 받았을 뿐, 수많은 성폭력 사건이 공소시효가 끝나 기소가 안 되고, 증거불충분으로 가해자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피해자에 대한 2차, 3차 피해도 심각하다. 맥가원은 미투와 페미니즘을 남녀 대결구도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단호히 반대했다. “미국 언론도 한국처럼 남자 대 여자 문제처럼 보이도록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남자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피해자들이 나서기 너무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인간들 사이의 동등한 존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여성의 인권 옹호를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낼 작정이다. 현재 온라인 시민 모임인 ‘로즈 아미’를 이끌고 있으며, 지난 4월엔 할리우드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는 책 <브레이브>도 출간했다. “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연설을 하고 변화를 지지한다.” 어떻게 하면 용감하게 살 수 있을까? “용감하다는 것은 두렵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용감하다는 것은 여러분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여러분이 불편해질지라도, 두렵더라도 행동해라. 두려운 것에 대항해서 행동할 때마다 당신은 더 용감해진다. 두려움 속에서 사는 것은 삶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여성대회에서 그는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당당히 앞으로 나서라”고 촉구하며 불끈 쥔 주먹을 치켜올렸다. 그는 2일 한국에서도 다시한번 주먹을 들어올릴 것이다. “평등과 자유의 메시지가 확산되는 한국에 오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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