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본제철은 원고 4인에게 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 직후인 오후 2시 39분, 94세의 이춘식씨가 법정 밖으로 나왔다. 그는 "너무 기쁘고, 슬프다"’고 했는데, 하얗게 센 그의 눈썹 아래로 눈물이 흘렀다.
2005년 이 소송을 낼 때는 원고가 4명이었지만, 이제 이씨 한 명만 남았다. 이씨는 이날까지 나머지 원고 3명의 사망 소식을 몰랐다고 했다. 연로한 그가 받을 충격을 걱정해 주변에서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판결 직전 이 사실을 안 이씨는 탄식했다. "이제 나 혼자만 남았어. 서럽구먼 서러워."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
이춘식, 여운택, 김규수, 신천수씨는 일제강점기이던 1943년 일본기업 ‘신일본제철’에 강제 징용됐다. 조선인 징용자들은 철 파이프 속에 들어가 석탄 찌꺼기를 제거하는 일과 같은 단순 노동만 해야 했다.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기계처럼 일했지만 월급은 한 푼도 못 받았다.
이춘식씨는 2013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꿈은 펼쳐 보지도 못하고 사회에 대한 원망만 커졌었다"고 말했다. 그는 "용광로 작업장에서 넘어져 배에 전치 12주의 화상을 입었고 일본 헌병들로부터 이유 없이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들은 1997년 "죽기 전에 빼앗긴 권리를 되찾고 싶다"며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내고 1인당 1억원의 위자료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패소했다. 당시 일본 재판부는 "신일본제철은 일본제철을 승계하지 않았고, 이씨 등의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됐다"는 이유를 댔다.
실망한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일본 시민단체 '일본제철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2005년 국내 법원에 같은 내용으로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일본의 확정판결이 우리나라에도 효력이 미친다며 패소판결을 했지만, 2012년 대법원이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법은 2013년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 여운택, 김규수, 신천수씨 등 3명은 세상을 떠났다.
이날 법원 앞에는 또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 시민단체 활동가 2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숨진 원고 3명의 영정 사진과 함께 ‘신일철주금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보상하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쳤다.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가운데)씨와 관계자들이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는 대법정으로 행진하고 있다. /박소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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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일본 기업이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13년 8개월만의 결론이었다. 재판부는 "이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 식민지배 및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청구권"이라며 "강제동원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한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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