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일본의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구 열도) 국유화로 악화된 양국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2박 3일 일정으로 찾았다. 2016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악화된 한중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작년 12월 3박 4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첫 방중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 총리로 7년만에 중국을 공식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커창 총리와 환담을 하고,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했다. /중국 관영 CCTV캡처 |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중인 상황에서 찾는 아베 총리의 방중은 문 대통령의 방중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정상 외교가 중국과 일본의 밀착을 낳았다"(CNN)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도 공정거래를 명분으로 통상 압박을 가하는 게 중일간 밀착을 이끈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안보 동맹국이지만 중국과 주요 교역대상국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의 1, 2위 수입대상국이다. 또 중국이 3번째와 4번째로 수출을 많이하는 상대국이 일본과 한국이다.
♢ 어정쩡한 의전
아베 총리의 방중은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다. 기념일은 23일이다. 그런데 아베는 25~27일 베이징에서만 일정을 소화한다. 주하이와 홍콩 마카오를 잇는 총연장 55km의 세계 최장 해상대교 강주아오 대교 개통식 참석 등을 위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2~24일 광둥성으로 내려간 탓이다. 문 대통령이 방중한 작년 12월 13일, 시 주석은 난징 대학살 80주년 추모식에 참석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25일 오후 도착한 아베 총리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짦은 환담을 한 뒤 중일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 기념리셉션에 참석하고, 비공식 만찬을 함께 했다. 리셉션에는 800여명의 양국 기업인과 정부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 방중 첫날 중국은 베이징에 있던 리 총리 대신 당시 상무위원 겸 부총리 장가오리를 한중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시켰지만 만찬에는 고위 관계자를 보내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26일 오찬도 리 총리와 정상회담 뒤 함께 하고, 저녁엔 시 주석 부부 주최 만찬을 소화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중국을 국빈 방문하는 기간 열 번 식사 중 두 번만 중국 측 인사와 함께해 홀대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당시 청와대는 "형식이 검소하더라도 내용이 알차면 그것이 정상회담 성과"라고 했다.
25일 아베 총리 방중 소식을 알린 중국 관영매체는 비행기 트랙에서 내리는 앞 부분만 보여줘 공항서 누가 영접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중국에서 류쿤(劉昆) 재정부 부장(장관)과 청융화(程永华)주일 중국대사 등이 영접했다고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아베 총리 방중기간 이뤄질 양국간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염두해둔 의전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통화스와프는 양국 중앙은행이 체결한다.
문 대통령 방중 때는 당시 부장조리(차관보급)였던 쿵쉬안유(孔鉉佑) 외교부 부부장(차관)과 추궈훙 (邱國洪)주한중국대사가 공항에서 맞이했다. 중국에서 외국정상 방중때는 통상 외교부 부부장이 영접하는 게 관례다.
일본은 리커창 총리의 지난 5월 방일에 이어 이번에 아베 총리 방중이 성사되자 내년 시진핑 주석의 답방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문 대통령 방중 때 시 주석의 방한을 요청했지만 1년 가까이 답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 경협 정상화에 무게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일본 총리로는 7년만에 중국을 25일 공식방문한 아베 신조 총리와 리커창 총리가 중일 평화우호조약 40주년 리셉션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 |
아베 총리의 방중에는 500여명의 기업인으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이 수행했다. 문 대통령 방중 때 역대 최대규모인 260여명으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이 수행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26일 개최되는 ‘중일 제3국 시장 협력포럼’엔 양국 기업과 정부 관계자 1400여명이 참석해 50건 이상의 협력 양해각서(MOU)에 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중단된 통화스와프를 규모를 10배 키운 30조엔 규모로 재개할 예정이고, 태국의 스마트도시 건설사업에 양국이 함께 진출한다. 또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 개발 협상을 조기 재개하고, 2011년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현 인근 수산물에 대한 중국 수입 규제 완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위안화 청산은행을 두고, 일본거래소그룹(JPX)과 상하이증권거래소의 상장투자신탁(ETF) 상호 상장하는 방안도 합의될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중일이 제3국의 인프라 시장에 공동진출하는 건 시 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에 일본이 간접적으로 동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리 총리는 25일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 기념 리셉션 연설에서 일본이 일대일로에 참여하길 희망한다며 중국의 새 개혁 개방 프로세스에도 참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일중 우호 협력이 지속해서 발전하고 양국이 세계 평화와 번영을 촉진하는 데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 한 나라가 혼자서 문제를 풀수 없다. 일본과 중국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시간이 오고 있다"고 화답했지만 일대일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베이징의 일본 정부 당국자는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맺은 일대일로 협력문건 체결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할 상황에 있지 않다"고도 했다. 실리를 위해 중국과 협력하겠지만 미국이 반발하는 일대일로와 AIIB에 표면적으로는 거리감을 두는 외교적 행보로 보인다.
한국은 2015년 출범한 AIIB의 창설 멤버로, 문 대통령 방중기간 신북방∙신남방 정책과 일대일로 간의 연계를 통해 양국 기업의 제3국 공동 진출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었다.
중국에 대한 주요 투자국인 한국과 일본 모두 사드갈등과 센카쿠 분쟁 악화 이후 중국 투자를 줄였다가 최근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넘어야할 산들
리 총리는 25일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 기념 리셉션 연설에서 조약 체결 당시 일본이 전쟁책임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하나의 중국 원칙 견지 등을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베이징의 일본 당국자는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 과거사 문제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일본이 미국과 입장을 함께 하는 군사와 인권에서 어떻게 관계 개선을 이뤄낼지도 주목된다.
아베 총리의 방중을 계기로 일본 자위대 가와노 가쓰토시(河野克俊) 통합막료장(합참의장 격)의 중국 방문이 합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통합막료장은 지난 10년간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중·일 양국은 해·공군이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연결하기로 한 '핫라인'도 올해 안에 본격 운용하기로 했다.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이뤄내는 게 과제라는 지적도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아베총리가 프레너미(친구이자 적)인 중국과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사이에서 줄을 잘 타야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당국자는 일본 외교의 주춧돌은 미일 동맹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중국과 관계 개선을 할 때 늘 돌다리도 두드리는 식으로 접근한다"며 "센카쿠열도 분쟁 악화 이전 수준의 관계 정도로만 정상화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기념 리셉션에서 "양국 관계를 새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은 1972년 국교 정상화를 담은 공동성명, 1978년 평화우호조약, 1998년 장쩌민 주석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공동성명, 2008년 후진타오 주석과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공동성명 등 양국 관계를 새로 정립하는 4차례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은 지난달 25일 미국, 유럽연합(EU)의 통상대표들과 협의한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중국의 산업보조금과 국유기업을 겨냥했다. 이 성명은 국유기업을 국가챔피언으로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시키는 ‘제3국’에 의해 공정한 경기장이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일본, 미국, 유럽의 농민, 기업, 근로자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왜곡을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3국’은 중국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지적이다.
성명은 올해말까지 산업보조금 규칙 협상을 가동할 수 있도록 각국 내부 절차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특히 주요 교역국이 향후 협상에 참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국유기업 정책을 공격하기 위해 글로벌 세력을 끌어모으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본과 중국은 인공지능(AI)기술과 지식재산권 문제 등을 다룰 기술혁신 대화를 창설키로 하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중은 문 대통령 방중때 사드 갈등을 넘어 관계 개선에 의견을 같이했지만 선양의 롯데월드 공사 재개와 단체관광 금지령 및 한류 콘텐츠 금지령 전면해제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는 등 중국의 사드 보복은 진행형이라는 지적이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