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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68년 만에···아들 품에 안긴 故박태홍 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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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16일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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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영천지구 전투에서 21세의 나이로 산화한 전사자가 68년 만에 칠순이 된 아들 등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지난 2000년 6·25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진행한 이래 130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고(故) 박태홍 일병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16일 오후 경기 양주에서 가졌다. 감식단은 이 행사에서 박 일병의 신원확인서와 확인 경과, 유해 발굴 당시 함께 발굴된 유품, 국방부장관 위로패 등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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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전북 부안에서 4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난 박 일병은 부모를 도와 농사를 짓다 6·25전쟁이 나자 1950년 7월 입대했다. 스물한 살 때였다. 그는 이미 첫아들을 얻었고 아내가 둘째까지 임신한 상태였으나 입대를 결행했다. 그는 국군 7사단 8연대 소속으로 1950년 9월10일부터 경북 영천지구 전투기간 중 영천지구 반격전에 참여했다.

국군은 1950년 9월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자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했다. 낙동강 방어선이 붕괴할 위기에서 국군은 박 일병이 소속된 7사단을 비롯해 추가 병력을 투입해 사흘간의 치열한 반격전 끝에 영천지역을 탈환했다. 이 전투로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은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한편 인천상륙작전 등 반격 작전을 펼칠 전기를 마련했다.

영천지구 전투에서 80여명의 국군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때 박 일병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박 일병의 유해는 2009년 4월 경북 포항시 죽장면 무명 504고지에서 전투화 등의 유품과 함께 발굴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 일병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또다시 1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품이나 유가족 유전자(DNA)가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박 일병의 큰아들 박영식(71)씨가 경기 의정부시 보건소에서 유가족 DNA 시료 채취에 참여했다. 지난달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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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유해와 큰아들의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사한 지 68년 만에 부친을 맞은 박씨는 “유가족 DNA 시료 채취에 조금만 더 일찍 참여했다면 10년은 일찍 아버지를 찾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박씨는 “나 역시 30여년 가까이 군복을 입고 육군 부사관으로 군 복무를 했다”며 “어린 시절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더없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버지를 잊지 않고 찾아준 국가에 감사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인 이학기 대령은 “유해는 찾았지만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전사자가 1만여명 정도”라며 “이분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가족 DNA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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