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대학을 졸업하고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송재영 씨(27)는 지난여름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음식점을 그만뒀다. 매일 저녁 8시간씩 서빙을 하다보니 피로가 쌓여 취업 준비를 제대로 못해 고민하던 차에 카카오 대리운전기사 수입이 아르바이트보다 낫다는 친구의 조언을 들었다.
송씨는 목·금·토요일 등 일주일에 3일 출근하기로 결정하고 대리운전기사로 등록했다. 고객 콜을 받고 이동할 때 드는 추가 비용이 걱정이었지만 올해 초 구입한 전동휠을 사용하며 비용을 아꼈다. 한 달 뒤 송씨에게 들어온 수입은 약 80만원.
송씨는 "수험 생활에 큰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공부할 때 운동할 시간이 없는데 저절로 '운동'도 되는 셈이어서 일석이조"라며 "취업할 때까지 대리운전기사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청년 실업난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송씨와 같은 '청년' 대리운전기사가 늘고 있다. 택시, 대리운전기사, 주차,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모빌리티가 15일 발간한 '2018 카카오모빌리티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들어 40대 이하 젊은 대리운전기사가 늘고, 이들은 전동휠·스쿠터 등을 이용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카카오 대리운전기사 서비스 'T대리기사'는 2016년 6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지난달까지 총 243만4841명이 이용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매월 이용건수가 2016년 50만건, 지난해 70만건으로 늘더니 올해는 100만건에 육박한다"고 설명했다. 'T대리기사'에 등록된 대리운전기사도 매년 늘고 있다.
출시 첫해 5만4000명이었지만 지난해 10만명을 넘어섰고 올해 9월 기준 12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2030 젊은 대리운전기사가 늘었다. T대리기사의 신규 가입 대리운전기사 연령대 비중을 보면 2016년에는 50대가 40%대로 가장 높았지만 점차 하락해 올해는 20%대로 내려앉았다. 반면 20대 신규 등록 대리운전기사는 첫해 10% 미만이었지만 지난해부터 20%대로 증가해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현재 수입이 필요한 대학생이나 수입이 적어서 부업을 원하는 사회초년생 등 40대 이하 젊은 층이 과거에 비해 많이 대리운전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면서 "전업이 아닌 짧은 시간 노동으로도 일정한 소득을 얻을 수 있어서 2030세대가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기사로 일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대리운전기사가 고객의 요청(콜)을 받고 이동할 때 사용하는 교통수단도 다양해졌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지난달 7~10일 T대리기사 1만2772명을 대상으로 이동수단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들은 대중교통(77.0%), 택시 합승(35.4%), 업체 제공 셔틀(26.1%) 순으로 사용했다. 여기에 전기자전거·킥보드·전동휠 등 전동 이동수단을 이용한다는 응답자도 10.6%나 됐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복수 응답인 점을 감안해도 전동 이동수단이 꽤 높은 수치를 차지한다"면서 "1인 교통수단 발달로 대리운전기사의 영업 행태도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T대리기사 비용은 시간대, 출발지, 목적지 등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10㎞ 기준 1만4000~2만2000원에 결정된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최근 1년간 대리운전기사 수입을 분석한 결과 월 최고 수입은 533만7600원이었다. 승객이 지불하는 요금 중 카카오모빌리티에 보험료나 프로그램 이용료 명목으로 지불하는 수수료(약 20%)를 제외하고 대리운전기사에게 돌아가는 금액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5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운전기사가 많지는 않지만, 전업 운전기사로 활동할 경우 대기업 직장인 월급 부럽지 않은 소득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대리운전기사를 전업으로 삼는 비중도 상당하다. 'T대리기사'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은 49.4%로 부업·아르바이트(50.6%)라는 비중과 비슷했다.
퇴직 후 전업 대리운전기사가 된 김 모씨(48)는 "오후 7시부터 12시간씩 일하며 월 200개 정도 콜을 받으면 300만원 이상은 벌 수 있다"면서 "회사 다닐 때 야근하고 시간에 쫓기던 것에 비하면 대리운전기사 생활이 편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7월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기업들이 야근을 줄이면서 직장인들 저녁 풍경이 달라진 현상은 택시 이용에도 반영됐다. 2000만명이 이용하는 국내 최대 택시 서비스 카카오 T택시가 대기업이 밀집한 서울 종로·서초·여의도 등의 지난 7~8월 택시 이용행태를 전년과 비교한 결과, 분석 대상 모든 지역에서 낮 시간이나 저녁 시간 택시 승차 점유율은 소폭 올라간 반면, 오후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심야시간은 확연하게 내려갔다.
[이선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