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해결 문제 관련 활동을 하는 사이트 '배드파더스' 구본창 대표. 김정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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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빠들이 양육비를 주도록 압박하기 위함’을 공개적으로 밝힌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를 운영하는 구본창(55) 대표는 이 사이트를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 7월 사이트를 개설했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과 사진, 미지급액 등을 게재하고 있다. 지난 9월 야구선수 최희섭의 얼굴이 잠깐 올라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지금까지 들어온 제보는 약 300건, 미지급 양육비 해결 건수는 14건, 현재 홈페이지에 게시된 양육비 미지급자는 119명이다.
구 대표는 지난 2015년부터 ‘코피노 아이들이 아빠를 찾습니다’ 사이트를 운영해온 이력이 있다. 이 사이트는 필리핀에서 아이를 낳고 연락이 끊긴 한국인 남성들의 신상과 사진을 공개해 수소문하는 사이트다. ‘개인정보유출’ ‘명예훼손’ 논란이 있었지만 구 대표는 “코피노 일로 실제로 고소가 들어온 건 0건”이라고 밝혔다.
각종 법적 문제, 고소와 협박의 위험을 떠안고 이런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방패막이’를 자처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5일 수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구 대표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는 “양육비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지만, 절대 개인이 풀 수 없는 문제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잘 나가던 영어강사, 코피노맘 돕다 ‘깡패’ 소문까지
['코피노 아이들이 아빠를 찾습니다' 사이트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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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대표는 한국에서 잘 나가던 영어강사였다. 1991년부터 12년간 재수학원 강사로 이름을 날렸고, 2003년부터는 서울 강서구에서 대성학원 원장을 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직접 학원을 차려 운영하다가, 대형 학원사업 붐이 일자 큰 기업에 학원을 넘기고 두 딸이 유학 중이던 필리핀으로 건너갔다.
그는 필리핀 이주 초기 유학생 대상 영어강사였던 한 여성을 알게 됐다. 이 여성은 한국 남자와 대학 때 만나서 2년을 동거했는데, 그 남자가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간다”며 한국으로 가서는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이 여성은 아이 병원비가 없어 클럽에서 댄서 일을 하던 중, 아이가 결국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클럽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 구 대표는 이 여성이 우는 모습을 보고 코피노 문제에 눈을 떴다. 2015년 5월 블로그를 통해 ‘코피노 아빠’ 신상을 게재하기 시작했지만, 신고가 폭주해 블로그가 폐쇄됐다. 이후 해외 서버를 통해 사이트를 오픈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갑자기 ‘코피노맘’ 관련 일을 한 데 대해 의심의 눈초리도 많았다. “코피노를 이용해 돈을 번다”는 비난은 물론이고, 현지 한인들 사이에서 반응도 좋지 않았다. 코피노맘들을 물리적으로 위협하는 세력을 막다 보니 깡패라는 소문도 돌았다. 구 대표는 “필리핀에선 유학생들이 많은 부촌에 살았는데, 유학생 엄마들 사이에서 ‘저 사람 깡패다’는 소문이 도니까 와이프가 외출할 때 ‘창피하다’면서 같이 안 다니려고 했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급 판결 후에도 70%가 양육비 못 받아"
['배드파더스' 홈페이지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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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파더스‘의 게재 기준은 ‘법원 판결문’ ‘합의서’ 등 서류 증거다. 종종 ‘애 엄마한테 지급하면 다른데 쓸까 봐 교육비로 직접 지불했다’며 항의가 들어오는데, 구 대표는 “그런 개개인의 상황을 다 고려하면 답이 없다, 우리는 판결문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항의가 들어오면 일단 사진을 내린 뒤, 자료를 받아서 양쪽에 재차 확인한 후 다시 올릴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양육비 문제, 개인 간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지난 8일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과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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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달 22일 서울 동대문 청과물시장에서 ’양육비 해결모임‘ 회원들과 미지급 양육자 간 소동에 대해 “우리는 무리지어 갔지만 만약 그 엄마가 혼자 갔다면 어떻게 됐겠나? 무진장 맞았을 거다. 공포스러운 상황”이라며 “양육비 문제는 절대 개인이 풀 수 없는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부모 가족, 양육비 피해자들은 살기 바쁘고 나서기 무서우니까,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당사자들이 그럴 여력이 없어서 정치세력화가 안 된다”며 “양육비 관련해서는 누구도 시위하는 걸 못 봤다. 조금 하다 말고 사그라든다. 제일 슬픈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청과물시장 소동의 주인공이었던 A씨는 동대문경찰서에 명예훼손으로 구 대표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지난 8일 네이버카페 ‘양육비 해결모임’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구 대표는 이들과 함께 한동안 활동한 뒤, 11월 다시 필리핀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한국 와보니 반려견 정책은 대통령도 관심을 가지고, 대중도 엄청난 관심을 갖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쪽은 정치적 표가 많은 거죠. 그런데 양육비 관련해서 목소리를 내는 단체는 단 한 군데도 없어요. '반려견보다 못한 게 코피노고, 한국의 양육비 피해자들은 그보다도 못하다'고 느꼈습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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