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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우리가 통과한 밤의 열기를 기억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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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준영 장편소설 ‘우리가 통과한 밤’

마흔살 연극배우 채선과 젊은 지연

스무살 차이 나는 여성들의 사랑 다뤄



한겨레

우리가 통과한 밤
기준영 지음/문학동네·1만3000원


“아무튼 되게 잘 다치는 거 같은데 조심을 좀 하지 그래?”

“꼭 저를 잘 아는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네가 날 오해하는 만큼은 나도 자유로워야지.”

“그렇다면, 영광이에요.”

“영광 같은 거 잘 느끼는 타입인 거야? 내가 싫어하는 유형인데.”

“다행이네요. 무관심에서 빨리도 발전한걸요.”

기준영의 장편소설 <우리가 통과한 밤>의 두 주인공 ‘채선’과 ‘지연’이 주고받는 대화다. 겉보기에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바탕에 깔린 호감과 관계 진전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무엇보다 ‘드립 배틀’을 하듯 핑퐁처럼 오가는 감각적인 대사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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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나이에 난생 처음으로 화제가 된 연극의 조연을 맡은 채선과, 그런 채선의 연기에 반해 팬으로 접근한 고아 출신 이십대 젊은이 지연. <우리가 통과한 밤>은 스타와 팬으로 만난 두 여성이 스무살 가까운 나이 차와 동성애에 대한 금기와 편견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번 생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드라마는 한정돼 있고, 그건 이미 오래전에 끝나버렸다”고 믿는 채선에게 지연의 적극적인 대시는 귀찮고 당혹스럽다. 둘의 관계는 지연의 선제 연락과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시작되었고, 관계를 끌어가는 것 역시 지연의 적극성과 열정이다. 채선은 냉소적인 구경꾼처럼 자신과 지연의 일을 지켜볼 따름이다.

“나는 순순히 끌려간다. 멈춘다. 버틴다. 공들인 탐색과 탐미의 시간. 내가 멈칫거리는 동안 지연은 내 부드러운 약점들을 찾아낸다. 나는 눈을 감는다. 내 무엇도 고유한 내 무엇이 아닌 것처럼, 없어진다. 사라진다. 감각만이, 지연이 이끄는 대로 느끼려는, 순종하는, 열중하는, 선택된 감각만이 남는다.”

이것은 두 사람이 처음 잠자리를 같이할 때의 모습을 시적으로 묘사한 대목이지만, 둘의 관계 자체에 대해서도 유효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채선은 적어도 네번의 연애 경험이 있고 그 가운데 한 남자의 자살이 남긴 상흔을 아직 떨쳐내지 못했고, 지연은 소설 첫머리에서 남자친구와 키스하는 장면을 채선에게 들킨다. 두 여성 모두 이성애의 경험을 지닌 이들이라는 뜻이다.

“두려워요? 왜 그렇게 자기 욕망을 두려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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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극 출연작 <중독>이 흥행에 성공한 데 이어 일본 공연이 결정되지만, 채선은 참여하지 않기로 한다. 지연의 이 질문은 표면적으로는 공연에 관한 것이지만, 그것이 사실은 둘의 관계와 그에 대한 채선의 태도를 채근하는 힐문임을 지연도 알고 채선 자신도 잘 안다. 나이는 훨씬 어림에도 관계를 주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연이다. 지연은 이렇게도 말한다. “내 숨통을 틔워준 사람이 날 구속해줬으면 좋겠어.”

망설이고 두려워하며 마지못한 듯 끌려가던 채선이 “이제 막 다시 눈을 뜨고 맞은 소박한 아침빛”을 대하듯 둘의 관계를 결국 받아들이기까지, 동성애 서사에 흔히 등장하기 마련인 외부의 금지와 억압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갈등은 어디까지나 당사자 두 사람 사이에서 빚어지고 해소된다. 물론, 표나게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외부적 장애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시간이 살아 있는 사람 모두를 어디로든 데려가리라”는 채선의 막연한 기대는 그가 매 순간 넘어서야 했고 앞으로도 맞닥뜨려야야 할 장벽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상기시킨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삶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걸 함께하고자 합니다.”

두 사람을 처음 서로에게 소개시켰고 둘의 관계를 죽 지켜봐왔으며 이제는 죽음을 눈앞에 둔 원로 배우 ‘문주성’에게 보낸 편지에서 채선은 이렇게 쓴다. 혼인서약을 연상시키는 진술은 소설 말미의 천문대 장면에도 나온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행복할 때나 초라할 때, 내 마음은 조용히 그 밤을 향해 기울어, 거기서 아직 말이 되지 않은 맹세들을 만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밤’은 일차적으로는 별빛이 실어나르는 천문학적 시간과 찰나와도 같은 생이 대비되는 천문대의 밤이겠지만 그것은 동시에 소설 제목을 낳은, “우리가 통과한 밤의 열기”를 가리키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이해 위에서 독자는 소설 마지막 문장들에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이게 생의 전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을 데는 한 순간과 기억나지 않는 그 나머지들이.”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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