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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사우디 언론인 ‘터키 실종’사건, 양국 외교문제로 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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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총영사관 압수수색 요청에… 사우디 거부 / 사우디 총영사관 방문 뒤 사라져 / 에르도안 “벗어났다면 입증해야…사건 주시… 조사 결과 밝힐 것” 공세 / 터키 경찰 “총영사관에서 피살돼” / WP도 표적 살해 가능성 제기해 / 양국 수니파 국가지만 불협화음 / 사우디 대외정책에 번번이 반대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쇼기(60)가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한 직후 실종된 사건이 양국의 외교 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방문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이 사안에 대해 “사우디 총영사관은 ‘그가 떠났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우디 총영사관은 (보안) 카메라도 없느냐”며 “그가 제 발로 나갔다면 총영사관은 영상으로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우디 정권과 왕실을 비판해 온 카쇼기는 지난 2일 이혼 확인서류를 받으려고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이후 연락이 끊겼다. 터키 경찰은 그가 총영사관에서 나온 것을 확인하지 못했으며, 총영사관 안에서 살해됐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터키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카쇼기를 살해하기 위해 사우디에서 15명의 암살팀이 이스탄불로 온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한 바 있다. 표적 살해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터키 경찰은 사우디 총영사관 출입구와 이스탄불 공항을 촬영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우디 총영사관에 대한 수색을 승인해 달라는 터키의 요청에 사우디는 처음에는 거부 의사를 밝혔다가 9일 건물 내부 조사에 동의했다. 사우디 총영사관은 카쇼기가 볼일을 마치고 총영사관을 떠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쇼기 실종 사건을 계기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사우디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어 양국의 외교적 갈등도 더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나는 사건을 주시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것이든 공식 조사 결과를 공표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세계일보

“실종 진상 규명하라” 2011년 노벨평화상 후보였던 예멘 여성언론인 타와콜 카르만 등이 8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 앞에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기의 사진을 들고 그의 실종 사건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이스탄불=AFP연합뉴스


터키는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수니파가 다수인 국가다. 하지만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가 추진하는 핵심 대외 정책에 대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번번이 반대 입장을 보이며 불협화음을 냈다. 터키는 지난해 사우디가 주도한 카타르 단교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카타르를 지원했으며, 사우디의 숙적 이란과도 경제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우디가 테러조직으로 분류한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고 있다.

카쇼기는 사우디 정부와 왕실을 비판해 온 저명 언론인이다. 그는 과거 사우디 왕실과 가까웠지만 살만 국왕이 즉위한 이후 예멘 내전 개입과 카타르 단교 등 강경 외교 정책을 펼치는 것에 대해 비판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실세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에 대해서도 “푸틴처럼 행동한다”며 “그는 법을 입맛대로 집행한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왕위 경쟁자, 기업인, 전·현직 고위관료 등 기득권층과 왕실을 비판하는 성직자, 인권운동가를 무더기로 체포했다.

카쇼기는 지난해 9월 신변의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건너가 머물러왔다. 약혼녀가 터키 국적이어서 터키 정부에 혼인 신고를 하려고 터키를 방문했다가 실종됐다.

한편 사우디의 오랜 동맹인 미국도 우려를 나타냈다. 사우디 정부와 친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지금 당장은 그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지만 매우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공식 방문국가로 사우디를 찾았으며, 무함마드 왕세자와 각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날 성명을 통해 “카쇼기의 실종에 관한 철저한 조사를 지원하고, 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사우디 정부에 요구했다.

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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