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9 (수)

딱보면 알겠지?…‘빅로고’ 부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패션업계 대문짝만한 로고 열풍

구찌 등 명품 브랜드도 동참

불황에 ‘비싼옷 과시’ 심리 작용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직장인 이아무개(34)씨는 최근 백화점에서 명품 발렌시아가의 모자를 구입했다. 그가 고른 것은 발렌시아가 로고가 커다랗게 새겨진 볼캡(야구모자)이었다. 멀리서 봐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큰 로고인 ‘빅로고’ 유행을 따라잡기 위한 선택이었다. 로고가 너무 크면 오히려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빅로고가 유행이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큰맘 먹고 명품을 산 건데 명품으로 보이는 게 좋지 않나요?” 이씨는 되물었다.

이씨 사례처럼 100m 앞에서도 보일 만큼 옷을 뒤덮은 빅로고 디자인이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발렌시아가, 구찌,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의 신제품은 대부분 빅로고를 내세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한겨레

명품이 주도하던 빅로고 열풍은 국내선 게스, 휠라, 엠엘비(MLB), 루이까또즈 등 중고가 패션업계까지 퍼진 상황이다. 지난 5월 롯데백화점은 빅로고 기획전을 열면서 “지난해에 비해 빅로고 의류가 모여있는 유니캐주얼 매출이 30%이상 뛰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빅로고는 1990년대 스포츠 브랜드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디자인이다. 당시 힙합 음악을 만들고 듣던 흑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가슴팍에 나이키와 아디다스 로고가 커다랗게 새겨진 후드티, 박스티 등이다.

이처럼 빅로고는 그다지 비싸지 않은, 중저가 의류 브랜드에서 즐겨 쓰던 방식이었다. 브랜드 홍보도 해야 하는 상황과 맞아떨어진 디자인 콘셉트다. 하지만 몇해 전부터 명품 브랜드들이 빅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과거 명품 브랜드는 개성있는 디자인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정석이었다. 로고는 되도록 가렸다. ‘아는 사람만 알아보라’는 것이 마케팅 전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레트로(복고)와 스트리트 패션(일상적인 거리 패션)이 유행을 끌자 영감을 얻은 디자이너들이 빅로고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로고가 너무 커서 보기가 민망할 정도의 크기까지 커진 상황이다. 빅로고보다 크기를 키운 ‘메가로고’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다.

반면 브랜드 홍보를 위해 로고를 내세웠던 저가 의류들은 로고를 감추는 중이다. 급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유니클로는 계속해서 로고를 가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유니클로의 성공은 ‘로고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일본의 무인양품은 아예 디자인 콘셉트를 로고가 없는 ‘로고리스’로 잡고 있다. 한국의 패스트패션(SPA)브랜드인 이랜드 스파오, 삼성물산 패션부문 에잇세컨츠도 로고리스를 유지하고 있다.

비쌀수록 로고가 커지고, 쌀수록 로고를 없애는 현상의 이면엔 장기 불황이라는 경기 사정이 녹아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선 이씨의 사례처럼 명품을 자주 구매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누가 봐도 명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빅로고 제품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명품 의류를 수입하는 한 대형 의류업체 관계자는 “디자인 유행도 있지만, 국내 소비자의 경우 ‘내가 명품을 입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며 “명품을 자주 구매할 수 없는 소비 위축 상황이 한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형 백화점 관계자도 “비싼 옷을 입는다는 것을 보이고 싶은 심리가 빅로고 열풍의 원인으로 보인다”며 “실제 명품 구매가 이제 시작단계인 중국인들이 빅로고 제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명품 구입이 처음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하던 1990년대로 돌아갔다는 의미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