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작 그 진전이 무엇인지는 거의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가 7일 "김정은 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검증할 사찰단을 초청했다"고 했고, 폼페이오가 8일 로이터 통신에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도 사찰이 수용될 것"이라고 말한 게 전부다. 풍계리는 김정은 말대로 이미 '사명을 끝마친' 곳이다. 6번이나 핵실험을 한 북은 추가 실험이 필요 없다. 북은 이미 5개월 전에 국제 사찰단 없이 일방적으로 풍계리 갱도를 폭파시켰다. 만약 국제 사찰단이 뒤늦게라도 풍계리에서 북 핵실험의 전모를 어느 정도라도 가늠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북핵 폐기는 핵탄두와 핵물질, 핵물질 생산 시설을 없애는 것이다. 이미 용도가 끝난 핵실험장 폐기는 의미가 없지는 않다고 해도 본질 문제는 아니다. 북이 언급한 영변 플루토늄 생산 시설도 마찬가지다. 북은 이미 우라늄 농축으로 방향을 바꾼 지 오래다.
풍계리에 대한 뒤늦은 사찰이 협상 결과의 전부라면 그것은 '진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김정은과 폼페이오가 몇 시간 이상 대화한 만큼 공개 안 된 비핵화 관련 협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 핵심은 핵탄두·시설에 대한 북의 신고다. 폼페이오 방북에 동행한 미국 관리는 로이터 통신에 '(북 비핵화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느리게 움직이는 비핵화 협상'이라고 했다. 실제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고 이렇게 되면 '비핵화'가 아니라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북핵의 기정사실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북핵의 기정사실화를 막을 가장 중요한 수단은 대북 제재다. 설사 김정은이 국제사회를 속일 전략을 갖고 있다고 해도 대북 제재만 확실하게 지키면 북을 바른길로 이끌 수 있다.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선(先) 핵 폐기, 후(後) 제재 해제라는 원칙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 한다. 김정은·폼페이오 회담에서 지엽적인 쇼 아닌 핵 폐기 본질 문제에서 '진전'이 있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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