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1 (금)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91] 안전과 자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198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지사 마이클 두카키스가 안전띠 착용 의무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주요 사설은 물론 하버드대 교정에서 듣는 이야기는 비판 일색이었다. 스스로 다치고 죽을 권리가 있는데 주정부가 뭔데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외며 성장한 내게는 실로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다.

매사추세츠주 안전띠 법안은 주의회에서 천신만고 끝에 찬성 77표, 반대 62표로 통과됐다. 민주당 하원 의원 프랭크 우드워드의 연설이 결정적이었다. 음주 운전자의 차량과 충돌해 사망한 18세 딸이 만일 안전띠를 맸더라면 목숨을 건졌을 것이라며 울먹인 그의 말에 모든 의원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곧바로 무효화 서명 운동이 일어나 결국 이듬해 주민투표까지 치러야 했다.

이처럼 어렵사리 안전띠 의무화 법안을 통과시킨 매사추세츠주는 미국의 다른 14개 주와 마찬가지로 경찰이 다른 위반으로 차량을 멈췄다가 안전띠를 매지 않은 걸 발견했을 경우에나 겨우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다. 미국의 34개 주에서는 안전띠를 매지 않은 것만으로도 경찰이 차를 멈춰 세울 수 있다.

지난 9월 28일 도로교통법이 개정돼 우리나라 모든 도로에서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됐다. 내게는 33년 만에 다시 맞는 의무화다. 아직 택시에서는 조금 불편하지만 나는 국립생태원장으로 일하던 시절 뒷좌석에서도 안전띠를 매는 데 익숙해졌다.

난생처음 기사가 운전해주는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앉았지만 잠을 청하는 일 빼곤 딱히 할 게 없었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동안 사고라도 나면 속수무책일 것 같아 자연스레 안전띠를 매게 됐다. 본디 순응을 거부하는 게 자유의 본질이지만 나와 내 가족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구속은 자진해도 좋을 듯싶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