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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발언대] 외국어 오남용·'우리말 파괴' 너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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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9일은 572돌 맞는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날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유산인 한글은 외국어에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우리말 파괴' 현상도 도(度)를 넘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커피숍 및 학원·음식점 간판 상당수가 외국어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부 외국어는 우리말에 동화되어 자연스럽게 쓰고 있지만, 한글로 표기해도 의사 전달이 가능한 말을 굳이 외국어를 빌려 쓰기도 한다. 플랜, 카센터, 마트, 알바, 카페 등은 그렇다 하더라도 'Hair shop' 'Study group' 등은 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영어를 그대로 드러낸 경우다. 동네마다 있는 '치킨집'을 왜 '닭튀김집'이라고 하면 안 되는가. 감칠맛 나는 우리말이 있는데 굳이 외국어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두레생협' '지혜학원' '깊은 생각' 등의 간판을 보면 쉽고 정답게 느껴진다.

우리 말과 글을 순화하는 데 앞장서야 할 언론이 어려운 외국어를 많이 쓰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방송 좌담 프로그램을 보면 외국어를 너무 많이 써서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종종 본다.

학술 분야도 심각하다. 학술회의 주제 발표문을 보면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들어 있는 문장이 많다. 영어를 주로 사용하고 우리말은 토씨 정도만 들어 있다. 전문용어는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무기질'을 '미네랄'이라고 하고 '단백질'을 '프로테인'으로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정확한 우리말이 없으면 관련 기관이 협의해 적절한 표기를 정해 보급해야 한다.

최근 10~2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조어나 줄인 말이 급속하게 퍼지면서 '우리말 훼손 또는 파괴'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말 어법(語法)에 맞지 않는 국적 불명 신조어를 모르면 구(舊)세대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한글과 우리말은 민족정신의 진수이다. 이를 상실하면 혼을 뺏긴 민족이 된다. 현재 언어생활은 우리말과 영어·일본어를 비롯한 각종 외국어가 뒤죽박죽 섞여 혼란을 빚고 있다. 만약 세종대왕이 한글날을 맞아 서울에 온다면 다른 나라에 잘못 온 것으로 알고 돌아가실까 봐 걱정된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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