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풍등 불씨에 고양 기름탱크 폭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찰, 풍등 날린 스리랑카인 체포

"CCTV 보니 탱크 인근에 떨어져 불씨가 환기구 통해 내부 불붙여"

7일 발생한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기름 탱크 화재는 스리랑카 국적의 근로자가 인근에서 풍등(風燈)을 날리다 발생한 화재라고 경찰이 발표했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8일 오후 4시 30분쯤 스리랑카 국적의 A(27)씨를 중실화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비전문취업 비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기름 탱크 인근 야산 서울~문산 고속도로 강매터널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로 파악됐다.

조선일보

'지팡이 모양' 유증기 환기구로 빨려들어간 불씨 - 8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에 있는 대한송유관 경인지사의 기름 탱크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소방 당국 관계자들이 전날 발생한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현장 감식을 벌이고 있다. 사진 왼쪽의 흰 원 부분이 유증기 환기구다. 경찰 관계자는“기름 탱크마다 이 같은 환기구가 7~8개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스리랑카 근로자가 날린 풍등의 불씨가 환기구를 통해 들어가 불이 옮아 붙으면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성형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기름 탱크에서 약 300m 떨어진 강매터널 현장에서 풍등을 날렸다. 날아간 풍등은 기름 탱크 인근 잔디밭에 떨어지면서 불이 붙었다. 경찰은 이 불씨가 기름 탱크의 유증기 환기구를 통해 내부로 옮아 붙어 폭발하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작은 불꽃이 옮아 붙어 이 같은 폭발 화재가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기름탱크에 설치된 방범카메라를 통해 풍등이 잔디밭에 떨어지는 장면부터 폭발이 일어나는 장면까지 모두 확인했다"며 "초등학생도 보면 한 번에 이해할 정도로 명확하게 불이 붙은 과정이 찍혀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강매터널 공사 현장의 근로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당시 풍등을 날린 사람이 A씨임을 확인했다. A씨 역시 풍등을 날린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은 화재 상황을 담은 방범카메라 영상 등 수사 결과를 9일 오전 10시 발표할 예정이다.

조선일보

앞서 7일 오전 11시쯤 발생한 화재는 발생 17시간 만인 8일 오전 3시 58분에야 완전히 진화됐다. 옥외 탱크에 저장된 휘발유 440만L 중 266만L가 불에 탔다. 소방서 추산 재산 피해액은 약 43억5000만원이다. 화재 진화를 위해 인력 684명, 장비 224대가 투입됐다.

그러나 화재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리며 갖가지 추측을 낳기도 했다.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는 "창사 28년 만에 처음 벌어진 사고로, 예상되는 원인조차 없을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인근 고속도로 공사 현장의 발파 작업이 원인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이날 오전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련 기관이 참여해 진행된 현장 감식에서도 발화 원인이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화재 당시 외부인의 접근이나 내부 작업이 없었고 탱크 내부도 발화 요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폭발로 인해 소화 장치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사실은 확인됐다. 송유관공사 측은 "화재 발생 당시 폼액(진화액) 발사 장치가 가동돼 6000L가량이 뿌려졌으나 폭발이 워낙 거세 초기 진압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6월 자체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지난달에도 추가로 안전 점검을 벌였으나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기름 탱크 안에는 화재 발생 시 진화를 위한 폼액 투입 장치 2개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폭발로 탱크 덮개가 날아가며 폼액 투입 장치가 훼손되면서 한 개는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초기 진압에 실패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민들은 A씨의 긴급체포 소식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양시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대학생 임준서(25)씨는 "풍등 하나에 그렇게 큰 사고가 났다니 믿기지 않는다. 이래서야 불안해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고양시 주민 문하용(32·직장인)씨는 "20년 넘게 살면서도 화전동에 기름 탱크가 있는 줄도 몰랐다"며 "경고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주변에서 풍등을 날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번에 화재가 난 기름 탱크가 다수 모여 있는 저유소는 고양을 비롯해 판교·대전·천안·대구·광주광역시·전주·원주 등 8곳에 있다. 불이 난 고양 저유소의 경우 총 20개 탱크 가운데 14개에 기름이 들어 있었다. 현재 기름이 보관된 탱크가 전국에 총 120여개라고 한다. 규모가 가장 큰 판교 저유소는 하루 7000만L 출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저유소 경비는 외부 용역 업체가 담당하고 있다.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는 "무인 감지·경비 시스템과 방범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경비가 정기적으로 순찰하지만 풍등이 날아오는지를 확인할 정도로 방범 카메라 화면을 계속 보고 있기는 어렵다"고 했다.

수도권 기름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판교 저유소는 국내 공항 등과 같은 국가중요시설 나급(級)으로, 국방부 등에서 점검한다. 하지만 나머지 저유소의 경우 국가중요시설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한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저유소 외에도 전남 여수와 울산 등 남해안 2곳 정유공장과 저유소를 연결하는 송유관(1200㎞), 송유관에 석유를 수송하는 시설인 펌핑장 등을 운영한다. 전국 저유소와 송유관엔 우리나라가 6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유류가 저장돼 있다.

고양 ‘저유소 화재’ 범인 20대 스리랑카인…'풍등날려 실화 혐의

[고양=조철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