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닮은 반려인들, 해가 지면 “그만 집에 가자”
반려문화 축소판…“유행하는 견종들이 다시 버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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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두야, 집에 가자!”
문앞까지 쫓아오던 검정 푸들 상두가 집에 갈 낌새가 보이니 쪼르르 뒤돌아 달려갔다. 18일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반려견 놀이터 ‘개떼놀이터’는 사람 아이들이 뛰노는 여느 놀이터와 비슷했다. 해가 뜨면 아이들이 재잘대며 몰려들기 시작하고, 해가 지면 엄마·아빠의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소리가 공기를 채웠다.
개와 사람이 모이는 반려견 놀이터는 한국의 반려견 문화를 압축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반려견과 사람이 유대를 쌓아가는 모습부터, 개와 개, 사람과 개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문제, 심지어는 요즘 유행하는 견종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애니멀피플’은 개떼놀이터에 협조를 구해 이날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일 알바’를 하며 반려견 놀이터의 하루를 관찰했다.
반려인과 꼭 닮은 삐삐, 크림이, 동동이…
오전 10시, 놀이터에 출근하자마자 걸레를 손에 쥐었다. 문 여는 시간인 11시 전에 공간을 정비하고 밤 사이 쌓인 먼지를 닦아야 했다. 원석 공동대표의 지시를 받아 일회용 장갑을 끼고 항균제를 묻힌 걸레를 들고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았다. 바닥 또한 개들이 핥아도 무해한 항균 제품으로 닦아냈다. 가지런히 각을 맞춘 장난감과 놀이 시설, 반질거리는 테이블… 정돈된 반려견 놀이터는 우리 집보다 깨끗해 보였다.
11시가 넘으니 개를 안은 사람들이 하나둘 입장하기 시작했다. 놀이터 사람들과 반려인과 개가 익숙한 듯 눈인사를 했다. 평일에 이곳을 찾는 손님은 대부분 단골이다. 수원에서 시츄 삼식이(9)와 함께 온 영어 강사 김민선(42)씨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이곳을 찾는다.
몇 년 전만 해도 김 씨는 밤낮으로 일을 하느라 삼식이와 이렇게 시간을 보낼 틈이 없었다. 김씨의 남편도 아침 일찍 나가 컴컴해져서야 집에 들어왔다. 부부가 바쁘게 사는 동안 삼식이는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6살, 한창나이의 삼식이가 덜컥 아팠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김씨가 삼식이의 생활을 돌이켜보니 우울증인 것 같았다. 늘 혼자 있는 삼식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을 줄였다. 산책 시간을 늘리고, 목줄을 풀고 놀게 해주려 반려견 놀이터를 찾았다. 삼식이는 어릴 적에 다른 개를 만난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개들과 잘 어울리진 못했다.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어린 개를 구경하며 가만가만 움직였다. 그래도 이곳을 찾은 지 1년 남짓 지나며 제법 사회성을 길렀다. 엄마 바짓가랑이 붙잡듯 반려인 옆에 꼭 붙어 있던 삼식이는 제법 혼자 돌아다니기도 하고, 이날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주는 간식도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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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 온 개들은 3개월 된 포메라니안부터 17살 코카스패니얼까지 나이도 다양했다. 이날 처음 놀이터를 찾은 9개월 푸들 크림이는 놀이터를 종횡무진 누비며 즐거워했다. 작은 수영장에서 생애 첫 수영도 즐겼다. 간호사 박재심씨(48)는 쉬는 날이면 꼭 7살 치와와 동동이와 17살 코카스패니얼 삐삐와 함께 이곳을 찾는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한가롭게 쉬는 박씨 곁을 삐삐와 동동이가 맴돌았다. 차분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박씨처럼 개들도 부산스럽지 않게 놀이터에서의 시간을 즐겼다.
17년을 함께 살든 9개월을 함께 살든,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 닮듯 반려견과 반려인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사회성 좋은 크림이가 놀이터를 찾은 개들에게 놀자고 반갑게 달려드는 것처럼, 개교기념일을 맞아 엄마와 함께 이곳을 찾은 크림이 반려인 송애린(11)씨도 놀이터를 찾은 모든 개에게 환하게 웃으며 예쁘다고 칭찬하기 바빴다.
이 비숑은 어느 집 비숑이지?
점심 무렵이 되자 손님이 더 많아졌다. 실내외 놀이터와 주방을 맡은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이곳은 반려견 놀이터이자 카페이고 식당이기도 했다. 바쁘게 커피를 내리고, 음료수를 만들고, 식사 주문이 들어오면 음식을 내왔다. 짬이 나면 실외 놀이터에 나가 개들이 밟고 다칠 만한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진 않았는지, 치우지 않은 똥은 없는지 살펴야 했다. 두 개의 수영장에서 발에 물을 묻힌 채 실내로 들어오는 개가 있으면 다른 개나 사람이 미끄러지지 않게 바닥에 흘린 물을 얼른 닦아야 했다.
오전에는 어떤 개가 누구와 함께 왔는지 파악이 됐지만, 오후가 되면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개 손님’ 중에 비숑프리제의 비율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놀이터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아이 얼굴을 구분해 알아봤지만, 나는 구름처럼 부풀린 하얀 머리털에 동그란 얼굴, 새까만 눈동자가 비슷해 보여 이름을 구분해 부를 수 없었다.
이날 만난 40여 마리의 개 가운데 약 15마리가 비숑프리제였다. 다음으로 포메라니안, 푸들 순이었다. 개 손님 중에는 믹스견들도 있었지만 한때 유행했던 몰티즈는 단 한 마리, 더 오래전 유행했던 요크셔테리어 같은 견종은 한 마리도 없었다. “이것도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 가운데 하나일 텐데, 여기서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유행하는 반려 견종을 확인하게 돼요.” 원 대표가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행하는 견종은 많이 ‘생산’되고, 많이 버려진다. 유기견 가운데에도 이들 견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정지혜(30)씨는 비숑프리제 캐시(2)와 검정 푸들 상두(1), 보더콜리 믹스견 조아(2)를 키운다. 조아는 유기견센터에서 태어났고, 캐시는 배꼽 탈장이 있어서 팔리지 않았던 개, 상두는 두번 파양 당하고 갈 곳 없이 새 반려인을 기다리던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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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와 함께 방문한 이한나(34)씨도 아파트 안에 버려진 검정 푸들 요미(1)와 3개월 때 파보 장염에 걸린 채 성당 안에 버려져 있던 비숑프리제 밀크(6)를 키운다. “나이 들고, 안 예쁜 애들이 버려진다고요? 품종견이건 어리건 상관없이 좀 키우기 힘들어지면 버려지는 게 현실이에요.” 정씨가 말했다.
잘 논 개가 잠도 잘 자네
해가 저물고도 개들은 시간을 모르고 놀았다. 커피를 손에 쥔 채 행여 다른 개들과 싸우지는 않을지, 배변을 하진 않는지 눈으로 몸으로 뒤를 쫓는 반려인들은 동네 놀이터에 아이들 따라 나온 어른들 모습과 다름 없었다. 함께 사는 개에 애정이 깊은 사람들이다 보니 타인과 다른 개를 배려하는 수준도 비교적 높아 보였다. 반려견에 애정이 깊은 만큼 개싸움이 사람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일일 알바’의 입장에서는 해 질 녘 개들이 뛰노는 마당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에 평화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노을을 배경으로 개들이 늦도록 노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그렇게 좋을 수 없지요.” 마당을 바라보는 기자에게 장명석 공동대표가 말했다. 개들은 신나게 뛰놀고 간 날에는 유독 곤히 잔다고 한다. 하루를 잘 보낸 아이가 만족스러운 밤을 보내는 것처럼.
용인/글·사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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