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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소득주도성장은 1950년대나 쓸 정책… 지금은 자해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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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허영한 기자




원로 경제학자인 김병주〈사진〉 서강대 명예교수가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해 "자해(自害)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병주 명예교수는 민간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홈페이지에 지난 12일 '경제 난국을 풀어낼 마법의 공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국가미래연구원은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곳이다. 이 글에서 김 명예교수는 "소득 주도 성장이 성공하려면 1950년대 경제개발 이전 한국 경제처럼 대외 교역 비중이 미미한 미(未)개방 경제이거나 개방 경제라면 다른 경쟁 상대국들이 보조를 맞추어 동률 이상으로 임금을 인상해주어야 한다"며 "오늘날 한국처럼 대외 교역 비중이 높은 나라가 독자적으로 임금을 올리는 것은 자국 이익 제일주의 국제 경쟁에서 자해 행위가 된다"고 했다. 12일은 8월 취업자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000명 증가에 그치고 실업자가 8개월째 100만명을 초과한 고용 참사가 발표된 날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주도 성장의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거세게 제기됐는데 경제 원로인 김 교수가 일침을 놓은 것이다.

김 명예교수는 이어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근로장려금 등은 '소득'이 아니고, 생산이라는 소득 창출 활동이 수반되지 아니하는 일방적 금전 수수"라며 "그 돈의 원천은 정부 자금, 다시 말해서 조세이거나 정부 부채여서 '소득 주도'는 궁극적으로 재정 파탄과 국가 부도로 인도된다"고 덧붙였다.

김 명예교수는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를 거쳐 1970년부터 2004년까지 34년간 서강대에 후학을 양성한 '서강학파'의 대표적 학자다. 2001년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냈고, 2000년 은행경영평가위원장, 2009년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금융권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등 경제 현장에도 적극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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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상담 받는 여성 구직자들 -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소득 주도 성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취업자 수 증가 폭이 두 달 연속 5000명 이하로 떨어지는 고용 참사가 빚어지고 있다. 지난 5일 대전시청에서 열린 ‘2018 대전 여성 취·창업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상담을 받고 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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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겨냥해 "현 정부 발탁 인사 가운데는 소액 주주 권익, 공정 거래 등 시민운동의 여러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수재형 인물들이 있다. 도덕적 우월감도 강하고 그만큼 자신감도 충만하다. 재계에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이어 "우려되는 것은 당면 과제의 미시적 국면에 매몰되며 자기 진영 논리를 앞세우는 반면 과거의 준거(準據)는 무시하고 중립적 인사들의 충고도 묵살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라며 "전쟁터도 아닌 토론의 자리에서도 임전무퇴이고, 언론 보도에서 오기(傲氣) 부림도 정책 일관성으로 착각함이 엿보인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적폐 청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날렸다. 김 명예교수는 "공급 측면의 독과점에 대해 개혁 의지가 실종돼 있다"며 "노동자 10% 내외의 조직 노조가 나머지 90% 노동자 권익을 짓누르고 있다. 대기업에서 하도급 기업으로 내려갈 소득 낙수 효과 통로를 차단하는 주범이 누구인가. 특히 금속노조 등 귀족 노조의 상습적 파업, 일자리 세습에 대해서 정부는 왜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나머지 90% 노동자도 국민이다. 지지 세력에 가중치를 주고도 평등을 말하는가"라며 "적폐(積弊)가 남의 폐단, 적폐(敵弊)로 오인되는 한 국내 기업의 해외 탈출과 산업 공동화를 피할 수 없고, 일자리 늘리기는 공염불"이라고 경고했다.

김 명예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올해 초 김광두 부의장에게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이 정권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간 자칫 험한 꼴을 당하기 일쑤고 내 나이(79세)도 있어서 놔두고 있었다"며 "그런데 요즘 경제가 돌아가는 모양이 너무 한심해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는 미국의 경제 호황도 끝나고 미·중 무역 전쟁도 심화돼 우리 경제가 내년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경제정책을 수정해야 하지만, 이미 너무 나갔기 때문에 못 바꿀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최규민 기자(qm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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