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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양극화 없앤다더니 더 키워…文정부 '소득주도성장'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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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 성장’이 중대 기로에 섰다. 그간 최저임금 인상 등 저소득층 소득 확대에 주력했음에도 빈부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정책 기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23일 발표한 ‘2018년 2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분배 수준을 보여주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23을 기록했다. 소득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소득보다 5.23배 많다는 의미다. 이는 2분기 기준으로는 지난 2008년(5.2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한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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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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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2분기 기준 전체 가계소득은 전년보다 4.2% 늘었지만 1분위(소득 하위 20%)ㆍ2분위(20%~40%)는 각각 7.6%ㆍ2.1% 줄었다. 반면 부유층인 5분위의 소득은 10.3%로 사상 최대로 늘었다.

이미 고용 상황은 사상 최악 수준이다. 지난달 신규 일자리 증가는 1년 전에 비해 60분의 1로 추락해 5000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성장률은 반도체 수출에 힘입어 간신히 3% 안팎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경기선행지수는 15개월째 내리막을 나타내는 등 투자ㆍ소비는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대기업 중심의 성장정책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반성 아래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했지만, 일자리ㆍ경기에 이어 이젠 분배마저 놓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전문가들이 꼽는 정부 정책의 문제는 우선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은 2년 새 무려 29%나 오른 상황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로자의 소득이 늘면서 분배를 개선하고, 내수가 활성화하는 선순환 모델을 기대했다. 그러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되레 고용을 축소해 근로자의 수익을 줄이고,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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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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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 전반적인 소득 분배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역설적으로 소득주도성장이 소득 불평등을 키운 셈”이라며 “세금으로 영세기업의 임금 인상분을 보존해 주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후유증은 내년에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로 상충(相衝)하는 정책이 동시에 쏟아지는 것도 효과를 저하시키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를 늘리려고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기업의 비용을 증가시켜 고용을 줄이게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근로 시간을 줄여 오히려 근로자의 소득 감소를 부추긴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양립하기 힘든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난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경제 정책은 실험이 아닌 만큼 정책 효과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는 신속한 수정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시장 원리를 무시한 ‘세금 퍼붓기’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예컨대 자영업자들을 지원한다며 세금과 카드 수수료를 깎아주고, 근로장려금ㆍ일자리안정자금 지원 금액을 늘리는 것은 자율과 경쟁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한다. 결국 비용은 다른 경제 주체들에 전가되고, 수십조원의 혈세를 삼키게 된다. 정치권에서 ‘소득주도 성장이 사실은 세금주도 성장’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주도 성장이 몸통이라면 공정경제는 왼발, 혁신성장은 오른발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정부는 왼발로만 걸어가고 있다”며 “지금으로선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 시켜야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소득도 늘어나 소득주도 성장도 효과를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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