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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유령`이 된 과거를 그리는 남자…中 행위예술 대표 작가 마류밍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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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No. 9, 2015~2017, Oil on canvas, 200x150㎝.


학고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마류밍(49)의 회화는 시간의 흔적이 역력하다. 흐릿한 나무 형태만 보이고, 배경은 온통 검은색. 두껍게 칠한 물감을 칼로 긁어내 균열을 일부러 만들어냈다. 불에 타버린 나무처럼 보인다. 그리고 덧칠하고, 벗겨내고. 세 과정을 거쳐 한 점을 완성하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린다. 작가에게 회화란 시간의 축적이자, 행위의 축적인 셈이다.

중국 작가 마류밍의 개인전 '행위의 축적'이 학고재에서 열린다. 2014년 중국 상하이와 학고재에서 연이어 선보인 개인전 이후 4년 만이다. 그는 신체의 해방을 주장하는 여장 나체 퍼포먼스 '펀·마류밍'(1993~2004) 연작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다. 이번 전시에는 과거 퍼포먼스 장면, 불, 풍경, 인물 등을 그린 회화 19점을 걸었다.

17일 학고재에서 만난 작가는 "찰나에 불과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시절 함께 사진을 찍은 관람객이 많았다. 덕분에 지금까지 기억하게 된 관람객 모습을 회화로 남기고 있다. 반복된 촬영 속에서는 나는 '유령'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전시에 걸린 작가의 자화상은 형태가 불분명하게 보였다. 반면 관람객들은 사실적인 모습이다. 그의 회화는 과거에서 뻗어나왔지만 동시에 단절을 꾀하고 있었다. "누화법과 균열화법으로 회화를 그리는 건 오래전부터 기법적인 실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톈안먼 사태가 있던 1989년, 우한 후베이미술학원에 재학 중이던 그는 처음 행위예술을 선보였다. 억압된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을 나타내는 퍼포먼스였다. 1993년에 베이징 둥춘에서 그가 선보인 퍼포먼스를 세계적 작가 '길버트&조지'가 찾으면서 중국 행위예술을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 중국 사회의 강박적인 문화 저변에 시사점을 던지는 파격적인 작품으로 주목받은 작가가 나이를 먹으며 온건해진 걸까. 그는 "현재의 중국도 사회문화적 변화가 엄청나다. 인터넷을 통한 화려한 정보가 흘러넘치지만 실재 삶과는 너무 괴리가 있다. 이런 진실에 가깝지 않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억압받는 신체를 반복적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체 퍼포먼스를 하던 시절 체포되어 2개월간 구금되기도 했던 그는 고국에서 여전히 핍박 받고 있다. 엄격한 검열로 전시에 공수하려했던 작품 중 누드화 4점은 한국으로 가져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9월 16일까지.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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