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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결국 믿을건 관료뿐? 4차위 앞지른 기재부 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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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정책은 대통령 관할… 기재부가 맡고 난 후 ‘창조경제’와 비슷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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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노믹스’로 불리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3대축’은 소득주도 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이다. 3대축이 쳇바퀴처럼 함께 잘 굴러가야 J노믹스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지론이다. 3대축 중의 하나인 혁신성장이 최근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기획재정부는 8월 13일 혁신성장 로드맵을 담은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을 공개했다.

기재부는 데이터, 인공지능, 수소경제 등의 3대 전략투자 부문과 에너지신산업, 드론, 바이오헬스 등 8대 선도사업을 선정했다. 이들 분야에 2019년에만 5조원을 투입해 혁신성장을 이끈다는 계획이다. 기재부는 “이들 분야는 투자규모와 리스크 측면에서 개별기업이 나서기 어려운 점이 있어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결국 혁신성장의 성패가 관료들에게 달리게 된 셈이다.

국가의 비전 수립과 미래 먹거리 발굴을 관료들이 주도하는 건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실패로 결론난 전임 정부의 창조경제가 그랬다. 이 때문에 기재부가 주도해나갈 혁신성장을 놓고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본래 혁신성장을 포괄하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달라고 문 대통령이 직속으로 둔 민간 주도의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역할과 위상도 애매해지게 됐다.

소득주도 성장 논란 뒤 기재부가 주도권

처음부터 기재부가 혁신성장을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기재부가 혁신성장을 전담키로 역할분담이 됐더라면 진작에 로드맵이 나왔어야 한다. 본래 혁신성장의 청사진을 그리는 건 문 대통령이 직속으로 둔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몫이었다. 이는 지난해 10월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의 출범식 당시 축사에 나선 당시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 확인된다. 문 대통령은 축사에서 “혁신성 장은 소득주도 성장과 함께 새로운 경제성장을 위한 새정부의 핵심 전략”이라며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출범이 혁신성장의 청사진을 만들어내고 우리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4차위가 중심이 될 것으로 보였던 혁신성장은 올 들어 소득주도 성장이 풍파를 맞으며 기재부가 주도권을 쥐게 된다. 문 대통령은 5월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혁신성장에 대해 “우리 정부 1년이 지나도록 혁신성장에서 아직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며 “혁신성장에 대해 우리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에서 더욱 분발해주시고 더욱 규제 혁파에도 속도를 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당시는 악화된 경제지표와 최저임금 인상 논란 등으로 문 대통령이 수세에 몰리고 정부 내 불협화음 의혹마저 불거질 때였다.

아직 활동 1년도 안된 4차위를 못 믿었던 것일까, 성과내기에 다급해진 문 대통령이 경제관료들에게 SOS를 보낸 것일까.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기재부는 6월 초 혁신성장을 전담할 내부 조직을 신설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한 달이 지나자 ‘혁신성장본부(혁본)’라는 전담조직의 윤곽이 마련됐고, 다시 한 달가량이 지나자 국가 차원의 혁신성장 로드맵이 탄생했다.

물론 기재부가 로드맵을 허투루 만들었을 리는 없다. TF를 꾸린 뒤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민간전문가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고 각 부처의 의견도 취합했다. 3대 전략투자, 8대 선도분야를 선정한 기준도 공개했다. 투자의 시급성, 발전 가능성, 플랫폼·인프라의 성격 등이 선정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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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만에 급조된 혁신성장 로드맵

그럼에도 로드맵에는 급조된 흔적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기재부는 혁본을 출범하며 “200여명 규모의 매머드급 민간자문위원단을 꾸렸다”고 밝혔다. 8월 7일에는 고형권 기재부 1차관 주재로 자문위원 위촉식을 갖고 간담회도 열었다. 고 차관은 이날 대표격으로 참석한 10명의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며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활발하게 정책을 제안하고 조언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기재부가 8월 14일 실제로 자문위원 위촉장을 발송할 때 자문단 규모는 180여명으로 줄어 있었다. 본인이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줄도 모르는 ‘후보’들이 상당수 있었던 탓이다.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가 고사한 한 민간전문가는 “기재부로부터 자문위원을 맡아달라는 제안조차 받아본 바 없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자문위원을 민간협회 등을 통해 추천받다보니 수락 여부를 다 확인못해 생긴 일”이라고 밝혔다.

기재부가 13일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혁신성장 전략투자 분야별 담당자’가 명시돼 있다. 기재부가 주도는 하더라도 실제 집행은 유관부처에서 하다보니 각 부처별 담당자를 따로 명시한 것이다. <주간경향>은 특정 분야에 대한 세부계획을 묻기 위해 담당자로 명시된 타부처 공무원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해당 공무원은 “왜 나한테 전화를 했느냐”고 되물었다. 기재부 보도자료 이야기를 건네자 그는 “거기에 적힌 담당자 연락처는 기재부가 임의대로 해놓은 것”이라며 “나도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고, 실제 해당업무를 하는 담당자는 따로 있다”며 전화를 돌려줬다.

기재부가 주도하는 혁신성장의 모습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많이 닮았다. 지금은 기재부라면 박근혜 정부 때는 ‘창조경제’를 전담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있었다. 창조경제를 하기 위해 각 부처에서 공무원이 파견돼 창조경제기획국이 꾸려졌다. 김동연 부총리가 6월부터 신설한 ‘혁신성장경제관계장관회의’는 박근혜 정부 당시 ‘창조경제위원회’를 연상케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창조경제위원회는 장관이 위원장이 되고 각 부처의 차관급 실무자가 위원으로 참석했다는 점 정도다. 인공지능, 데이터, 미래자동차 등 다루는 ‘주제’ 역시 혁신성장이나 창조경제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한훈 기재부 혁신성장정책관은 1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가재정포럼에 참석해 “사실 창조경제도 그렇고 혁신성장도 그렇고 개념 자체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체적인 틀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조경제가 실패했던 트라우마 탓일까. 기재부 주도의 혁신성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창조경제 때도 그렇고 혁신을 관료들이 주도한다는 발상이 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며 “혁신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관이 아닌 민간이 주도해야 더 활력 있고 파괴력도 크게 마련인데, 기재부가 혁신성장을 끌고가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밝혔다.

기재부의 혁신성장 드라이브로 입장이 애매해진 건 다름아닌 4차위다. 4차위는 기재부의 혁본과는 ‘근본’부터 다른 조직이다. 표면상으로는 부총리급 이상의 위상을 가진 위원장직을 민간인사인 장병규 블루홀 이사회 의장이 맡고 있다. 위원장을 포함해 전체 25명인 4차위의 위원들도 20명이 민간위원이다. 5명의 정부 측 위원은 고용노동부 장관, 과기정통부 장관 등 장관급이 맡았다.

4차위의 주요 업무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종합적인 국가전략과 각 부처별 실행계획, 주요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일이다. 조직도를 보면 4차위에서 이 같은 심의·조정을 하면 과기부가 간사 역할을 하며 정부 부처와 소통하는 구조로 돼 있다. ‘대통령 직속’이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출범 당시만 해도 4차위가 국가 비전과 혁신을 그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대통령 ‘직속’이라던 4차위는 어찌 되나

혁신성장의 주도권이 기재부로 넘어가면서 4차위가 주요 국가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기재부가 8대 선도사업으로 선정한 ‘바이오헬스’ 부문의 경우 4차위가 ‘헬스케어특별위원회’라는 특위까지 꾸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마련 중인 사안이다. 논의 내용도 4차위의 헬스케어 쪽이 훨씬 더 포괄적이고 인공지능 등 다양한 유관산업과의 융·복합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 4차위는 헬스케어 내 ‘6대 프로젝트’를 마련해 연내 종합적인 헬스케어 프로젝트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재부가 이미 선도분야를 지정해 투자계획까지 확정지은 마당에 4차위의 헬스케어 프로젝트가 얼마나 영향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애써 만든 4차위는 왜 진작 기재부처럼 하지 못했을까. 4차위의 한 관계자는 “4차위가 의제를 끌고가기엔 부처(관료)의 장벽이 너무 높다”고 말한다. 4차위가 의견을 내고 전달을 해도 결국 이를 실행하는 건 관료들인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문제점도 꼽았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에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있거나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장하성 정책 실장도 마찬가지”라며 “민간위원들도 현업을 겸업하며 하다보니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한계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기재부는 기재부대로, 과기부는 과기부대로 각자 혁신성장을 하겠다고 따로 나선 꼴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주간경향>은 4차위가 출범할 당시 ‘4차산업혁명위의 관건은 파워(1250호 표지 이야기)’라는 기사를 통해 “4차위가 명확한 역할과 권한을 갖지 못할 경우 실패하게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전한 바 있다. 4차위가 가졌어야 할 ‘파워’가 기재부로 대표되는 관료집단으로 넘어가면서 결국 조직 출범 당시 제기됐던 우려가 그대로 재현되는 분위기다.

정작 4차위 측은 이 같은 해석을 부인한다. 기재부의 혁본 출범 이후 역할문제에 대해 묻자 4차위 관계자는 “혁본과 혁신성장 로드맵 자체가 사전에 4차위와 교감 및 협의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며 “오히려 기재부가 든든하게 정책을 밀어주고 예산도 많이 배정해줘서 4차위의 역할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교감설’을 주장하면서 이제와서는 조직의 위상과 역할을 스스로 낮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4차위는 본래 민간자문단 역할을 하기 위해 생긴 것”이라며 “앞으로도 여러 의미있는 정책 제안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4차위의 설립 취지나 목적과는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말이다. 대통령이 “미래를 부탁한다”며 직속으로 신설한 기구의 현주소다. 참고로 이 관계자 역시 공무원이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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