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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안희정 무죄 후폭풍…미투 피해자들 “피해자스러움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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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무죄 선고를 규탄했다.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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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행실 문제삼은 재판부…“피해자, 자기 검열할 것” 우려

-고학력 여성 저항할 수 없었다? 피해자들 “사실과 달라” 반발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안희정 1심 무죄 선고 후폭풍이 거세다. 재판부가 무죄 판결 이유로 ‘피고인 김지은 씨가 사건 이후 보통의 피해자와 다른 행실을 보였고, 주체성과 자존감을 갖고 있는데도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에 대해 특정한 피해자상을 정해놓고 피해자스러움을 강조해선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7일 서울서부지법에 따르면 재판부는 지난 14일 안 전지사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김 씨의 사건 이후 행동들을 열거했다.

재판부는 “러시아에서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하는 식당을 찾아 아침식사를 하려고 애쓴 점, 피해 당일 저녁에 피고인과 와인바에 간 점, 귀국 후 피고인이 머리를 했던 헤어샵에 찾아가 같은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받은 점 등을 볼 때 단지 간음 피해를 잊고 수행비서의 일로서 피고인을 열심히 수행하려 한 것뿐이라는 피해자 주장을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는 피해자로서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피해자의 그러한 언행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김 씨가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고학력 여성이고, 사건 이후 보였던 행동이 전형적인 성폭력 피해자와 다르다’고 주장했던 안 전지사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성폭력 사건에서 재판부가 피해자를 전형적인 피해자로 고정시켜놓는 일은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자는 무조건 사건 이후 정상적인 일상에 돌아가선 안되고, 특히 상사일 경우라도 반항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초 미투 운동에 참여했던 미투 피해자 김모(32ㆍ여) 씨는 “지금도 회식자리에서 허벅지를 은근슬쩍 만지는 상사가 있다. 나는 고학력 여성임에도 회사에서 말 나오는 게 두려워 참았고, 아침에는 웃으면서 인사하고 잘 들어가셨냐고 안부를 묻는다”면서 “이번 선고를 보면서 결국 자리에서 박차고 나오거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정하경주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도 “안희정 사건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경찰, 검찰, 사법부 모두 피해자가 사건 이후 보였던 행실이 ‘전형적인 피해자’와 다르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거나 무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피해자가 사건 당시 혹은 직후에 제대로 대응을 해도 ‘왜 당황스러웠을 텐데 그렇게 잘 대처했느냐’고 묻고, 당황스러워서 위축되거나 제 때 신고하지 못하면 ‘왜 바로 대처하지 않았느냐’라고 묻는 식이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의 대응이 모두 같을 수 없다.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신뢰할 수 없다면서 가해자의 말을 신뢰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재판부가 지난해 11월 카니발 추행 건에 대해 “피해자 스스로가 피고인의 신체접촉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행동을 했다”며 안 전지사 측 편을 들어준 것에 대해서도 여성단체에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 상담소장은 “결국은 재판부가 겉으론 번지르르 하게 설명을 했지만 결국은 여성들에게 자기 행동에 대해서 자기검열을 하게 하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한편 350여개의 여성ㆍ노동ㆍ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들어진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이하 미투시민행동)은 오는 18일 오후 5시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에서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 못살겠다 박살내자’ 집회를 열 예정이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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