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
비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지사에게 무죄 선고가 내려지면서 '편파 판결'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변호사들은 법리적으로 유죄 판단이 어려웠다고 지적했고 여성학자들은 앞으로 미투 운동에 끼칠 악영향을 우려하면서 사법부가 과거와 바뀐 게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14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에서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나 의문점이 많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자유가 침해되기에 이르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진술 일관성 없어"
해당 판결에 대해 여성 법조인들은 대체로 수긍이 가는 판결이라고 입을 모았다.
노영희 변호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자체가 유죄로 입증되려면 '위력'이 있었는지 증명돼야 한다"며 "재판 과정에서 반대 증거도 많이 나왔고 피해자의 진술도 일관성이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노 변호사는 안 전 지사의 부인인 민주원씨의 진술이 유무죄 판단에 크게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재판에서 민씨는 참고인으로 출석해 지난해 8월 김지은씨가 부부 침실로 들어왔다고 진술했다. 이에 김씨 측은 이에 피해자 측은 "수행비서로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재판부 입장에서 김씨의 행동이 아귀가 맞지 않는다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며 "김씨 말대로 복도에서 앉아 있더라도 '위력에 의한 간음'이라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안 전 지사의 주장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워 무죄가 나온 거로 보인다"며 "대한민국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김씨의 입장 역시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재판 전략이 아쉬울 따름이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에 속한 A변호사는 “지금까지 업무상 위력 간음은 위력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위력이 행사돼야 유죄가 인정됐다"며 “재판부는 위력은 맞지만 그게 피해자에게 성관계하기 위해서 행사가 됐는지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에 찬물 우려" "나아진 게 없어"
여성학계에서는 사실상 미투 1호 재판인 해당 사건이 무죄로 선고됨에 따라 향후 미투 운동이 퇴색될까 우려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김지은씨의 폭로로 많은 여성이 용기를 내고 미투 운동에 참가했는데 찬물이 끼얹어질까 염려된다"며 "결국 가해자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아 후폭풍이 몰아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김 교수는 안 전 지사의 재판 과정에서 언론의 보도 행태를 꼬집었다. 그는 "참고인 자격에 불과한 민씨가 '침실 발언'을 했을 때 언론은 성범죄를 개인 간의 남녀상열지사로 가뒀다"면서 "여자 대 여자의 싸움으로 흘러가니 꽃뱀 프레임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결국 이번 판결로 여성들에게 패배의 굴레가 작용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원 교수는 “80년대 후반하고 나아진 게 아무것도 없다"며 ”수십년간 성폭력 문제에 인식 변화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매번 성폭력 무죄가 되는 각본은 거부의 저항 정도였다"며 "결국에는 물리적 증명이 남아야 죄가 되는 건데 이 때문에 피해자 진술은 무시됐다”고 지적했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활동가는 “이 재판 자체가 위력이었다고 본다”며 “이번 판결에서는 희망조차 찾아볼 수 없고 재판부가 권력 행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판단할 자격도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안 전 지사의 비서 김씨는 판결 직후 "끝까지 당당히 살아남아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초석 되도록 힘내겠다"고 전했다. 이어 "어둡고 추웠던 긴 밤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그럼에도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저와 함께 해주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약자가 죽음 택하는 사회 아니라 당당히 살아남는 사회 되도록 할 것이다. 끝까지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최용준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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