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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터키 환율 폭락 일파만파…미국이 조장하는 신흥국 ‘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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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한 터키 리라화 위기

기축통화국 미국이 통화위기 촉발하고 방조

개도국에게 일반특혜관세 폐지 등 무역전쟁

터키 본보기로 개도국 길들이기



미국의 보복성 관세 부과로 가속화된 터키 리라화 폭락이 신흥시장 전반의 통화 위기로 번지는 양상이다.

13일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리라화 가치는 한때 13% 떨어진 7.24리라까지 폭락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리라화는 지난 10일 이미 16%나 떨어진 상태였다. 리라화 폭락의 연쇄 효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도 13일 10% 이상 떨어지며 2016년 6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약세를 보이던 인도 루피화도 사상 최저로 떨어졌고, 러시아 루블화는 2년6개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3년여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겨레

통화 위기 확산은 기축통화국 미국이 주요 동맹인 터키에 대해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지난 10일 2배로 올리면서 촉발됐다. 터키 경제와 관련이 깊은 유로화 역시 13일 1유로당 1.137달러까지 가치가 떨어지면서 지난해 7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세계 증시도 위축됐다. 이날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2.0%,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6%는 떨어졌다. 국내 증시의 코스피도 1.5% 떨어진 2248.45로 장을 마쳤다. 코스닥은 3.72% 급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1133.9원으로 5원 올랐다.

지난 주말 터키 리라화 폭락으로 촉발된 신흥국 통화 폭락 사태는 ‘이례적’이다. 미국이 리라화 폭락을 촉발했고, 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기축통화국이 통화 위기를 촉발하고 방조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체제의 발등을 찍은 행위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번 리라화 폭락은 트럼프 행정부가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관세를 각각 50%, 20%로 올린다는 ‘보복 조처’를 내놓으며 시작됐다. 터키 정부가 미국인 앤드루 브런슨 목사를 석방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의 뿌리엔 트럼프 행정부가 표방하는 ‘미국 우선주의’와 즉자적인 미국 국익 챙기기가 있다.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미국은 중국이나 유럽연합(EU)을 상대로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의 표적은 이제 경쟁국을 넘어 개발도상국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터키발 외환 위기의 특징을 ‘미국의 외면’이라 요약했다. 1990년대 중반 멕시코 통화 위기나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땐 미국이 해결을 위해 선의의 노력을 했지만, 이 가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워 전 세계 상업·금융 관계를 확장·강화·보장한다는 사명을 내팽개친 탓이다.

실제로 미국은 개발도상국에 직접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2일 미국이 그동안 개발도상국에게 적용해온 일반특혜관세제도(GSP)를 유지할지를 두고 국가별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1976년 도입된 일반특혜관세제도는 121개 개발도상국의 특정 상품에 미국이 특혜관세를 부여하는 제도다. 이는 패권국가이자 기축통화국으로서 개발도상국에 ‘시혜’를 제공해, 이들을 미국의 자장 안에 묶어 두는 역할을 해왔다. 이 신문은 미국이 “최근 터키를 표적으로 삼게 됐다”며 타이, 인도네시아, 인도도 특혜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터키를 본보기로 삼은 것이다.

이런 태도는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 규범과 관습을 뒤엎는 것이기도 하다. 터키는 2차대전 이후 중동에서 미국의 국익을 떠받치는 ‘최후의 보루’같은 동맹국이었다. 중동의 유일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는 미국 중심의 중동 질서를 유지해 온 핵심 상수였다. 터키가 70여년에 걸친 소중한 동맹을 뿌리째 흔들겠다는 것이냐고 분노하는 이유다.

결국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한 터키의 통화 위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정부는 미국을 향해 “다른 동맹을 찾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후보국인 러시아나 중국은 당장 국제 금융시장을 진정시킬 능력이 없다.

터키는 현재 약 3500억달러의 외채를 안고 있지만, 외환보유고는 3일 현재 1029억달러에 불과하다. 그나마 가용 액수는 200억달러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국가 부도 사태에 몰릴 수 있는 위기 상황이다. 외신들은 이번 위기가 터키처럼 고질적인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전했다. 리라화 폭락이 주요 신흥국 통화뿐 아니라 유로화, 더 나아가 세계 주식시장을 뒤흔드는 이유다.

정의길 선임기자, 박수지 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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