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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증오 멈춰라” 수천명 외침에 기 못 편 백인우월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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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장] 샬러츠빌 유혈 사태 1년 집회

백인우월주의자 20여명 백악관 앞 집회에

시민 수천명 “부끄러운 줄 알라” 반대 목소리

“인종주의자들이 미국 대표하지 않아

트럼프 시대 인종주의 문제 후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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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홈 나치스! 고 홈 나치스!”

‘나치주의자들은 집으로 가라’는 구호가 한 무리에서 수차례 쏟아지더니, 잠시 뒤에는 “셰임, 셰임, 셰임!”(부끄러운 줄 알라)이라는 구호가 옆에서 터져나왔다. 또 근처의 한 무리는 “나나나나 나나나나 헤이헤이헤이 굿바이!”라는 ‘나나 헤이 헤이’의 후렴구를 합창했다. 수천명의 이들 시민이 일제히 겨냥한 곳은 경찰의 차단벽 너머에 모인 20여명의 백인우월주의자 시위대였다.

12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바로 앞 라파예트 광장과 그 주변은 백인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이들과,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로 뒤덮였다. 지난해 8월12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유혈 사태 뒤 1년 만에 인종주의자들과 그에 대응한 맞불 집회가 백악관 앞에서 열린 것이다. 지난해 샬러츠빌에서는 남부연합 상징물인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에 항의하는 백인우월주의 집회와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이 집회 도중 한 백인우월주의자가 반대 진영을 향해 차량을 몰고 돌진해 헤더 헤이어가 숨졌다.

‘유나이트 더 라이트2’라는 백인우월주의자 단체가 백악관 앞 집회를 예고한 이날 오후 5시30분이 되기 몇 시간 전부터 일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찰은 폭력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백악관 주변의 교통을 통제하고 헬기를 띄워 상황을 살폈다. 경찰은 백인우월주의 집회 참가자들을 지하철역부터 집회 장소까지 모터사이클 등으로 에워싼 채 안내했다. 또 이들에 반대하는 시민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백악관 앞에서 양쪽의 집회 공간을 엄격히 분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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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이번 집회 참가 예상인원을 400명으로 당국에 신고했으나 실제 참가자는 20여명에 그쳤다. 그들은 경찰에 둘러싸인 채 자기들끼리 연설을 하고 조용히 들었다. 현장을 통제하던 한 경찰은 기자에게 “가서 보면 바로 셀 수 있을 정도”라고 했고, 한 미국 기자는 “저 사람들이 시위를 하러 온 건데, 오히려 둘러싼 경찰이 더 많아서 보이지도 않는다. 시위라고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은 통제선 안쪽에서 경찰에 둘러싸여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공원의 나무 위에 올라가서 그쪽을 살피던 반대 진영의 한 시민은 “겁 먹어서 조금 밖에 안 나왔나 보다. 샬러츠빌에서는 저들 숫자가 많을지 몰라도, 워싱턴에서는 다르다”며 웃었다.

실제로 이들 백인우월주의자들에 반대하는 맞불집회에 참석한 시민의 규모는 수천명에 이르렀다. 시민활동가, 직장인,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학생 등 연령과 직업층이 다양해보였고, 인종으로 봐도 백인과 흑인이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는데도 “저 사람들(백인우월주의자들)이 떠나야 나도 떠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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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근처의 알링턴에 거주한다는 개럿 펙은 기자에게 “샬러츠빌 사태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며 “저들이 미국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저들이 미국의 다수도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여기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인종 문제에 있어서 양쪽에 다 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살러츠빌 사태 때 “양쪽에 아주 좋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뉴욕에서 왔다는 마이클 맥도널드는 “많은 이들이 참석할 걸로 예상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며 “여기 나와있는 저 아기와 시민들 모두가 차별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에 산다는 레슬리 그리닝은 “백인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발상은 역겹다.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받는 세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인종주의 문제에서 미국이 후퇴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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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우월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이들은 “인종주의에 뭉쳐 싸우자”, “인종주의와 편견은 애국이 아니다”, “증오를 멈춰라”, “조용히 있지 않겠다”,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 등 여러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함께 외치는 구호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다. 새로운 세상은 가능하다”, “우리가 이긴다는 걸 믿는다”, “당신들의 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거리다” 등 다양했다.

이같은 기세에 눌린 탓인지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애초 예고한 2시간 집회를 채우지 않고 오후 6시께 조용히 해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샬러츠빌 사태 1년을 맞아 지난 11일 트위터에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주의와 폭력적 행동을 비난한다”고 적었으나, 이날은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워싱턴/글·사진 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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