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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한국 편의점 어쩌다 이 지경에-창업설명회 ‘한산’…거리로 나선 점주들 본사·점주 ‘묻지마 출점’ 정부는 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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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3일과 25일 편의점 A사와 B사 창업설명회. 예비 창업자를 가장하고 기자가 방문했을 때 설명회장에는 직원 혼자 문을 등지고 앉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직원이 급하게 일어나며 설명을 시작하려 했다. 왜 아무도 안 왔느냐는 질문에 직원은 “최근 3일간 창업설명회에 오겠다던 분들이 모두 취소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더워서 그런 거예요. 별문제는 없습니다”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뉴스만 보면 편의점이 금방 망할 것 같죠. 하지만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2030년이면 1인 가구 비중이 30%, 서울은 48%에 달할 것입니다.” 30대 초반 기자에게도 본사 직원은 “여전히 편의점 미래는 밝다”며 창업을 종용하고 있었다.

‘창업 0순위’였던 편의점 인기가 뚝 떨어졌다. 올 상반기 출점 속도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반 토막 났고, 1~2년 전 적게는 2명, 많게는 10명 가까이 참석하던 창업설명회에도 발길이 끊겼다. 기존 점주들은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며 ‘불복종 운동’ ‘카드 수수료 반환청구소송’ 등 대(對)정부 투쟁에 나섰다. 지난 3월 4만개를 돌파하며 거침없이 성장하던 편의점에 급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한국 편의점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한 ‘편의점 4대 적폐’를 살펴봤다.

매경이코노미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관계자들이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지급을 주장했다.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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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무분별한 출점 경쟁에만 몰두

▷시장 포화에도 매일 10개 ‘미친 출점’

한 골목은 물론, 한 건물에도 편의점이 여럿 들어설 만큼 포화도가 심각해진 데에는 점포를 마구 내준 편의점 본사의 책임이 가장 크다.

본사는 “1인 가구 증가로 편의점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예비 창업자를 꼬드긴다. 편의점 시장이 지속 성장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본사가 숨기는 사실이 있다. 편의점 시장 성장 속도보다 훨씬 빨리 점포가 늘어나 ‘점포당 매출’은 하락세라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편의점 점포당 매출은 지난해 2월 사상 처음 전년 동월 대비 감소한 후 올 1월까지 12개월 연속 감소했다. 지난 2월부터는 소폭 회복세를 보였지만 5월 증가율은 0.1%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기간 편의점 전체 매출 증가율은 9.1%로 백화점(1.8%), 대형마트(-4.5%), SSM(-1.2%)을 압도했다(오프라인 매장 기준). 즉 편의점 시장 성장의 열매는 본사가 취하고 포화에 따른 손실은 오롯이 점주가 지고 있는 상황이다.

편의점 수익성이 악화되자 업계는 출점 속도를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였다. 그러나 여전히 하루 10개 가까이 전국에서 편의점이 순증하고 있다. 이 같은 ‘미친 출점’이 계속된다면 2020년께 국내 편의점은 5만개를 돌파, 편의점당 배후인구가 1000명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수방관해 사태 키운 공정위

▷근접 출점 허용 무한경쟁 부추겨

정부의 부실한 관리감독도 도마 위에 오른다. 공정위는 근접 출점을 사실상 허용함으로써 무분별한 편의점 출점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지난 1994년 편의점 업계는 경쟁 브랜드 간 근접 출점을 막기 위해 ‘기존 점포의 80m 이내에는 신규 출점을 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2000년 공정위는 ‘경쟁사 간 담합행위’로 판단, 이를 무효화했다. 공정위의 제재(?)로 ‘한 지붕 두 편의점’이 가능해졌고 무한경쟁 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러나 공정위가 근접 출점 제한을 담합으로 판단한 것은 편의점의 특성을 간과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창업컨설팅학과장(FC창업코리아 대표)은 “식당이나 커피전문점은 가게마다 맛과 인테리어, 서비스 등이 제각각이지만 편의점은 담배, 음료, 식품 등 공산품 판매가 대부분이어서 브랜드 간 차별화가 거의 안 된다. 사실상 모든 브랜드가 동일 브랜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자 편의점 업계는 최근 다시 공정위에 근접 출점 제한을 허용해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전달했다. 염규식 편의점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편의점 가맹본부는 근접 출점 제한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공정위는 아직 담합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와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위 관계자는 “출점을 제한하면 기존 대형 사업자가 ‘나눠먹기식’으로 시장점유율을 고착화하는 담합을 저지를 수 있다. 신규 사업자 시장 진입이 어려워지고 소비자 이익도 줄 수 있어 신중히 결정할 문제”라며 여전히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묻지마 창업 점주들

▷투자위험 높은 ‘완전 가맹’ 선호

편의점은 프랜차이즈 사업이다. 점주 동의 없이 본사 마음대로 출점할 수 없다. 세계 최고 수준 편의점 포화 현상에는 ‘묻지마 창업’에 나선 점주 탓도 있다.

점주가 섣불리 편의점 창업에 나섰음을 보여주는 지표는 ‘가맹 타입 비율’이다. 편의점은 보증금, 임대료 등 창업 비용을 본사와 점주 중 누가 더 부담하느냐에 따라 가맹 타입이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점주가 점포 비용 대부분을 부담하면 ‘완전(또는 순수) 가맹’, 본사 소유 점포를 점주가 운영만 하면 ‘위탁 가맹’이다. 전자는 점주가 본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나 로열티가 적은 만큼 수익이 높지만, 그만큼 투자 리스크도 점주가 떠안는다. 그럼에도 국내 편의점의 약 70%는 이 같은 완전 가맹 타입으로 오픈한다. 완전 가맹 타입 비율이 3~20% 수준에 불과한 일본, 대만보다 훨씬 ‘공격적 투자’를 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 포화설이 수년 전부터 불거졌음에도 이처럼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철저한 시장 분석 없이 고수익에 대한 환상을 품고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했다.

▶편의점에 더 가혹한 카드 수수료

▷점주보다 카드사가 더 벌기도

편의점은 전형적인 박리다매 사업이다. 점포당 연평균 매출은 5억~6억원에 이르지만 실제 점주 소득은 약 2500만원에 불과, 영업이익률이 5% 정도에 그친다.

문제는 비슷한 소득을 거두는 타 업종 대비 카드 수수료를 훨씬 많이 낸다는 것. 현행 카드 수수료 산정 방식에 따르면 연매출 5억원 초과 시 매출의 2.5%를 수수료로 떼간다. 매출 5억원 이하 중소가맹업자는 1.3%, 3억원 이하 영세업자는 0.8%다. 실제 소득은 영세업자에 가깝지만 카드 수수료는 그보다 3배 이상 내는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편의점당 카드 수수료 지출은 월평균 70만원 안팎에 달한다.

이는 대기업 가맹점 수수료와 비교했을 때 더 가혹해 보인다. 대형마트 등 대기업 가맹점은 영세업자보다도 낮은 0.7%에서부터 시작한다. 현재 20대 대기업 평균 수수료율은 1.38%다. 경기 고양시의 한 편의점 점주는 “물건을 많이 사주면 가격을 낮춰주는 게 시장 이치라지만 대기업 가맹점보다 영세 편의점이 카드 수수료를 더 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토로했다.

오히려 카드사가 점주보다 더 많이 벌어가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품목이 담배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카드로 계산할 때 세금(3318원)과 원가를 제외하면 수익은 고작 405원. 여기서 카드 수수료로 카드사에 112.5원을, 가맹본사에 88.5원을 내면 점주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204원에 불과하다. 문제는 담배가 편의점 매출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

여론을 의식한 신용카드 업계는 8월부터 일반 가맹점에 한해 카드 수수료율을 최대 0.3%포인트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단, 인하 폭이 크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관계자는 “담배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는다. 현행 체제에서는 세금에 해당하는 결제액까지 카드 수수료를 내야 한다. 단순히 수수료율만 낮추기보다 담배처럼 세금 비율이 높은 품목을 수수료 산정에서 제외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라고 강조했다.

[노승욱·강승태·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69호 (2018.08.01~08.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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