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6 (일)

‘홀로움’…혼자 있고 싶은데 또 외롭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토요판] 이런,홀로!? 홀로의 외로움과 그리움

한강공원에 앉은 아저씨를 보며

본가에 계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았다면

일요일 오후, 함께 있지 않을까

독립적이고 싶어 택한 삶이지만

늘 배고프고, 외롭고, 사람을 바란다

가족과 떨어져 산 지 10년

함께하지 못하는 일상이 그립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몇 주 전 일요일 오전, 혼자 한강을 뛰었다. 가족과 연인들의 인파 속에서도 홀로 운동은 익숙하다. 후드를 쓰고 레깅스를 입고 노래가 크게 들리는 이어폰을 꽂고 집 근처 한강을 한참 뛰었다. 뛰다 보니 배가 고파져 근처 편의점에 앉아 은박지 그릇에 라면을 끓였다. 주말이고 날씨가 좋은 낮이라 사람들이 하도 붐벼 좀체 앉을 자리가 나지 않았다. 라면 끓이랴 쓰레기 버리랴 자리 찾아보랴 바쁘게 움직이다 드디어 난 빈자리에 짐을 두고 라면을 자리로 옮기기 위해 잠깐 자리를 비웠다.

서울살이 10년… 가끔은 그립고 아쉽다

라면을 가지고 온 사이, 50대나 6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자전거 라이딩 복장으로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혼자 도시락을 드시고 있었다. 약간 넓게 만들어진 자리라 그리 불편할 것은 없었지만 한번 물어보지도 않고 털썩 앉아 계신 게 약간은 신기했다. 나라면 물어나 보고 앉을 텐데. 어쨌든 나도 조용히 맞은편에 혼자 앉아 라면과 함께 산 캔맥주를 들이켰다. 맞은편 아저씨는 도시락과 함께 초록색 페트병을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이다인 줄 알았더니 페트병 소주였다. 아저씨는 컵도 없이 벌컥벌컥 소주를 마셨다. 쳐다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 초록색 페트병이 너무 ‘시강’(시선 강탈)이었다. 어색한 기류 속에서 마주보며 나는 맥주와 라면을, 아저씨는 소주와 도시락을 조용히 각자 먹었다.

처음에는 말도 없이 자릴 잡고 앉아 먹는 아저씨가 어처구니가 없다가, 이런 낮에 혼자서 페트병 소주를 병째로 드시는 게 신기했다가, 혹시나 또 말을 거는 그런 아저씨일까봐 경계하다가,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 어쩌면, 이 상황을 잘 모르는 남들이 지나가다 보면 우릴 부녀지간으로 알지도 모르겠다’. 약간은 안 친하고 어색해 거리를 두고 앉아 함께 밥을 먹는 그런 딸과 아빠 사이. 그러다 운동 뒤 더운 기운에 급하게 들어간 맥주 탓에 약간 알딸딸해지며 문득 우리 아빠가 떠올랐다. 지방 본가에 있을 우리 아빠. 나도 아빠랑 일을 쉬는 일요일에 이렇게 앉아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 텐데.

아빠도 술을 좋아해 늘 혼자 소주를 마시곤 한다. 나는 스무살 때 대학에 간다고 지방에 있는 본가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고, 혼자 서울살이를 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서울살이를 꾸역꾸역 해냈고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이제 본가보다 서울이 훨씬 더 내겐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분명 ‘혼자’ 사는 ‘서울’은 좋지만 소주병을 들이켜는 아저씨를 보며 아빠가 떠올랐고, 어쩌면 그 대신에 내가 많은 걸 놓치고 살 수도 있는 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가에서 아빠와 혹은 엄마와 함께 산다면? 우린 정말 다른 사람들이니 잘 떠났다는 생각을 늘 해왔지만, 반대로 어떤 걸 함께 겪고 나누고 공유했을까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빠와 동네 하천을 함께 걷다가 뛰다가 운동이 끝나고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엄마와 함께 집에서 조금 떨어진 분위기 좋은 찻집에 들어가 둘이서 내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까진 이런 상상을 할 이유가 없었다. 무뚝뚝한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밑에서 태어나 자란, 똑같이 무뚝뚝한 딸이 안 그래도 서로 살갑지 않은데 몇 년을 떨어져 사니 일상의 거리는 더 멀어진 듯하다.

20대 초반엔 ‘서울 생활 1~2년만 하면 힘들어서 집이 그립다’는 말을 비웃었다. 서울살이 10년이 다 돼가는 지금에선 그 시절의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지나온 시간이 가끔은 아쉽다. 이런 표현이 싫지만, 사람들 말처럼 정말로 나이가 들어서인지 가끔은 엄마, 아빠와 함께할 수 있는 일상이 그립다.

개인주의적이고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지만 역설적으로 동시에 나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꽤 자주 느낀다. 본질적으로 공허함과 조금의 외로움을 느끼는 지금의 내 기질이 어쩌면 어릴 때부터 오히려 너무 독립적이고 가족으로부터 떠난 일상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하는 고민을 최근에 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김태리가 연기한 혜원은 왜 서울을 떠났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진짜로 배가 고파서 왔다고 대답했다. 배가 고파서. 혜원의 그 한마디로 혜원이 느끼는 모든 감정과 시골로 내려오게 된 서사가 이해됐다. 서울에 올라온 뒤 나는 늘 배가 고팠고 늘 허기졌다. 특히 혼자서 밥을 먹을 땐 더더욱 그랬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든 인스턴트를 먹든 혼자 요리해 밥을 먹든 무언가 늘 배가 고팠다. 혼자서 집에서 밥을 먹으면 이상하게 늘 그렇게나 밥을 많이 먹게 된다. 이건 지금도 그렇다.

가족과 함께 살던 공간을 떠나 혼자 살아가는 게 내 성격이나 삶의 온도에 딱히 생채기를 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한 나는 또 한편으론 그렇게나 배가 고프고 외롭고 사람의 존재를 바랐다.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감정들이 그렇게 공존한다. 더 많은 걸 놓치기 전에 할 수 있는 걸 하자 싶어 예전엔 거의 내려가지 않던 본가를 최근엔 꽤 자주 들르게 됐다.

오랜만에 지방 집에 도착한 첫날 모두가 출근한 집에서 혼자, 그 짠 엄마 두부된장찌개를 밥과 함께 정신없이 퍼먹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끝나고 엄마 아빠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술에 취해서 전화로 남자친구에게 내내 엄마의 두부된장찌개 이야기만 해댔단다. 며칠 뒤 서울에 올라와서도 혼자 두부된장찌개를 끓이고서 밥을 네 공기나 퍼 먹었다. 마치 혜원이 원래의 집에서 정성 들여 자기가 만든 음식을 남김없이 싹싹 먹던 것처럼.

고등학교 때도 사실상 집을 나와 살아 1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따로 살았더니 그 티는 곳곳에서 난다. 엄마 아빠를 매번 볼 때마다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고 그래서 놀랍고 신기하다. 얼마 전엔 아빠와 처음으로 단둘이 뒷산에 올랐다. 이전까지는 아빠도 나를 딱히 데려갈 생각을, 나도 딱히 따라갈 생각이 없었지만 최근부턴 뭔가 달라졌다. 같이 산에 가자는 아빠의 무심한 제안에 나도 무심하게 알겠다고 답했다. 아빠와 1시간 정도 산을 타는 동안, 세상에서 제일 무뚝뚝한 우리 아빠가 그렇게 말이 많은 줄은 처음 알았다. 그렇게 아빠와 내 안주 입맛이 잘 맞는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빠는 내가 곱창과 굴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이렇게 떨어져 살고 일상을 공유하지 않은 티를 발견할 때마다 요즘은 씁쓸하다.

함께 먹던 라면이 그리운 시간

분명 이제는 혼자 사는 서울이 더 편하고 내 공간 같지만, 그리고 본가에 내려가 그 지역 사람들과 가족들과 함께 살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 싫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놓치는 일상이 아쉽고 아릿할 때가 있다. 혼자서 공허하고 외롭다. 옛날의 한 친구는 이런 감정을 두고 ‘홀로움’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아직도 힘들 때 본가로, 가족의 옆으로 아예 돌아가 살고 싶어하는 감정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런 홀로움의 감정은 가끔 함께 살았던 가족과의 일상에 대한 아쉬움으로 드러난다. 매일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가끔이라도 그 시간을 최대한 일상처럼 함께 지내보는 것, 그래서 서로의 일상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노력을 하는 중이다. 지금은 공부하다 밤에 출출해 아빠와 함께 티브이를 보며 끓여 먹던 라면이 그리운 시간이다.

김레기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