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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동물도 정신 건강이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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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이혜원 잘키움 동물병원장

독일서 행동치료 경험 살려 정신과 전문병원 열어

강박증·분리불안 등 행동교정에 약물치료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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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고등어 무늬의 1살 난 고양이 한 마리가 보호자와 함께 동물병원에 왔다. 이 고양이의 병명은 ‘강박증’이었다. 이유 없이 자기 꼬리를 씹는 게 문제다. 두세 달 전에 뜨거운 물에 등이 데이는 사고를 겪은 후 등을 핥기 시작했다. 핥지 못하도록 넥칼라를 씌워주자 등을 핥지 못하는 대신 꼬리를 씹기 시작했다.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주위를 경계하는 고양이 꼬리 끝을 살펴보니 털이 듬성듬성 빠져있었다.

고양이가 찾은 곳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잘키움 행동치료 동물병원’이다. 최근 개원한 이 동물병원에서는 일반 동물병원처럼 내과나 외과 진료는 보지 않는다. 오로지 정신과 진료만 한다. 일종의 신경정신과 전문 동물병원이다. 이 병원 이혜원 원장은 독일에서 직접 3년 이상 반려견 행동치료를 한 경험이 있다. 동물 행동치료수의사인 ‘셀리나 델 아모’가 쓴 책 ‘개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을 한국에 소개했다.

진료 과정은 사람이 정신과 병원을 갔을 때와 똑같았다. 초진 때 상담을 하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권하고, 약물을 처방하고, 상태를 지켜본다.

이 원장은 이날 1시간 30분 동안 보호자로부터 고양이의 식사량과 간식량, 산책 정도, 현재 지내는 환경, 유전적 요소, 과거의 경험 등을 들었다. 이어서 강박증이 나타난 원인을 파악한 뒤, 고양이가 더는 꼬리를 씹지 않도록 주위를 다른 쪽으로 돌릴 수 있는 특별 장난감을 만드는 방법을 전수했다. (종이 박스 안에 간식을 넣고 위에 고양이 발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뚫어 두어 발로 간식을 상자 밖으로 꺼내 먹도록 만든다) 동시에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을 극소량 처방했다. 한 달 반 후에 상황이 나아졌는지를 다시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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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외국에서는 동물도 약 처방을 포함해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흔한 일이에요. 우울증을 감기처럼 간단하게 보는 외국이 한국보다 정신과 병원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것처럼, 동물도 사정이 비슷해요.”

이 원장은 건강의 문제가 없는데도 강박증, 강한 공격성, 분리불안 등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개나 고양이는 행동교정치료뿐 아니라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신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신경 쓴다. 몸무게나 건강 상태에 따라 약을 결정한다. 혈액검사를 주기적으로 하고, 장기 처방을 하더라도 6개월을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약을 처방하면, 신경이 예민해서 행동치료가 효과적이지 않은 동물을 차분한 상태로 만들어줘요. 동물 스스로 훈련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거죠.”

이 원장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이상 행동을 고치기 더욱 어려워진다고 했다. 반려동물이 받는 스트레스, 고통은 보호자가 받는 정도보다 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치하면 행동치료로 절대 교정이 안 되기 때문에 스스로 고칠 수 없다면 ‘전문의’를 찾을 것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고양이 말고도 ‘안을 때 피가 날 정도로 무는 2살 된 치와와’와 ‘분리불안이 심한 7살 믹스견’ , ‘계속 한 자리를 뱅글뱅글 도는 푸들’ 등을 보고 있다. 어려서 사회화 훈련이 안 됐거나, 사는 과정에서 갑자기 정신적 문제가 생긴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게 목표다. 보호자와 동물 모두 건강한 정신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사진 이혜원 수의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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