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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축구 변방' 발칸반도, 유럽의 심장 정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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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월드컵]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기고

조선일보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


축구사의 가장 유명한 경구, 그것은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다음 말이다.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

알제 대학 골키퍼까지 지냈지만, 폐결핵으로 축구 선수의 길을 포기한 카뮈의 이 말은 단순히 인성 교육이나 예절 함양 같은 뜻이 아니다.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뛰어야만 하는 선수들처럼, 우리의 삶 또한 무의미와 부조리의 극한에 이를 때까지 살아야만 한다는, 숭고한 의미가 있다.

바로 그러한 면모를 잉글랜드와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보여줬다. 전반 초반에 골을 터트린 잉글랜드의 트리피어는 연장 후반 큰 부상으로 절뚝거리며 벤치로 나갔다. 선수 교체를 다 한 상태라 마지막 몇 분을 잉글랜드는 10명이 뛰었다. 트리피어는 벤치에 앉아 울었다. 그때 잔디에서는 크로아티아의 만주키치가 허벅지를 붙잡고 쓰러졌다. 시간을 끌 의도보다는 실제 많이 아파 보였다. 그들은 자기 생애의 소중한 120분을 완전히 탈진했다. 무의미와 부조리의 극한 너머까지, 어찌 되었든 살아야 하는 인간 운명의 숭고한 의무처럼 말이다.

장외에서도 그러했다. 잉글랜드는 16강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상대 팀 선수 실축으로 8강에 오른다. 이때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감독은 콜롬비아 선수를 끌어안고 위로했다. 그 자신 1996 UEFA 대회 준결승 승부차기 때 실축했던 뼈아픈 기억이 있기에, 엄청난 집합적 열광을 한 선수가 모조리 책임져야 하는 그 비장한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했다.

크로아티아는 어떠한가. 내전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선수들이다. 그들이 축구를 익힐 무렵 크로아티아는 슈케르와 보반의 시대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득점왕으로 현 크로아티아 축구협회장인 슈케르, 크로아티아 팬을 진압하는 유고 경찰을 때리고 철창신세를 지고 대표팀 탈락까지 한 보반은 지금 뛰는 선수들의 영웅이었다. 대표팀 주장 모드리치의 할아버지는 세르비아계 반군에게 처형당했다. 모드리치는 "수류탄이 빗발치는 도시에서 전쟁 난민이 된 소년에게 축구는 유일한 삶의 즐거움"이었다고 회고한다.

'발카나이즈(Balkanize)'란 단어가 있다. '적대시하는 여러 작은 지역으로 분열시키다'라는 뜻으로 발칸반도의 분열과 전쟁의 역사에서 나온 말이다. 구소련과 구유고 시절 크로아티아 하늘에 포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중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발칸 문학의 거봉이자 1961년 노벨 문학상을 탄 이보 안드리치는, 보스니아의 크로아티아계 출신이다. 그는 드리나강 다리를 배경으로 끝없이 '발카나이즈'되어 싸워온 피의 역사를 쓰면서도 포성 아래에서 숨 쉬고 있는 휴머니즘을 그려냈다.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의 크로아티아에 꼭 필요한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제삼자 처지에서는 대체로 약자를 응원한다. 전 세계 수많은 팬이, 잉글랜드를 물리친 크로아티아가 프랑스도 꺾기를 응원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런다. 모드리치 같은 스타일리스트가 어떤 상황에서도 공을 완벽하게 간수하고 우아한 드리블이나 간결한 패스로 공간을 창출해가는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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