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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트럼프 "英, EU와 완전히 끊어라"… 메이 총리 궁지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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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후 첫 방문… 영국 들쑤셔… 논란 일자 "가짜 뉴스" 발뺌

메이에 반기 든 존슨 前 외무엔 "훌륭한 총리가 될 것" 치켜세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각) 취임 후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해 'EU(유럽 연합)와 확실히 단절하지 않으면 향후 미국과의 관계에서 불이익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여러 외교적 파장을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소프트 브렉시트(충격을 줄이는 연착륙식 EU 탈퇴)'를 대놓고 비판하자 영국 내에서는 '내정 간섭'이라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브렉시트 갈등 때문에 곤경에 처해 있는 메이 총리를 트럼프가 또 한 번 뒤흔든 셈이다.

트럼프는 이날 공개된 영국 대중지 '더 선(Sun)' 인터뷰에서 "계속 EU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메이 총리의 계획은 미국과의 무역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영국이 브렉시트를 그렇게 처리하면 우리는 영국 대신 EU와 거래할 것이고, 그러면 아마도 미국과 영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죽일(kill) 것"이라고 했다. 브렉시트 이후 시작될 미국과 영국의 FTA 협상이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경고한 것이다.

메이는 지난 9일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등 내각 강경파가 소프트 브렉시트에 반발하며 사표를 던지는 바람에 사면초가에 몰려 있는 상태다. 여기에 트럼프까지 거칠게 공격하면서 메이를 더욱 코너로 몰아붙이는 형국이 됐다. 트럼프는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에 대한) 나의 조언을 무시한 채 정반대로 갔고, 그 결과는 매우 불행한 것이 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하드 브렉시트'파의 대표 격으로 메이에게 반기를 든 보리스 존슨은 한껏 치켜세웠다. 트럼프는 "(존슨은) 매우 재능 있는 친구이고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존슨이) 사임해 슬펐지만 언젠가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향후) 훌륭한 총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메이가 불쾌할 수밖에 없는 말을 거리낌 없이 던진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강경한 이민 정책에 비판적인 사디크 칸 런던 시장에 대해서는 "칸 시장이 테러범들과 맞서지 않아 런던에 범죄가 늘어났다"고 비난했다.

트럼프가 영국에 EU와의 결별을 강하게 주문하는 이유는 미국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EU의 환경·반독점 규제 등으로 미국 기업들이 제약을 받는다는 불만이 있었다. 영국이 EU와 완전히 갈라서야 영국 내에서 EU의 규제가 무력화돼 미국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고, EU의 위상도 축소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라는 얘기다.

트럼프의 이런 행보는 곧바로 영국을 들쑤셔 놓았다. 초청한 나라의 국가수반을 노골적으로 공격한 것이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가) 외교적 수류탄을 터뜨렸다"고 했다. 노동당의 벤 브래드쇼 의원은 "메이는 너무 나약해서 자기를 모욕한 사람을 위해 레드 카펫을 펼치고 있다. 굴욕적이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총리의 기반을 약화시키려는 전례 없고 비(非)외교적인 개입"이라고 했다. 트럼프와의 인터뷰를 보도한 '더 선'은 2016년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 투표 직전 브렉시트를 찬성한다는 사설을 1면에 게재했던 타블로이드 신문이다. 메이 총리 측은 트럼프의 '더 선' 인터뷰 내용을 사전에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메이 총리와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더 선' 인터뷰 내용에 대해 "메이를 비판한 게 아니며, 메이에 대해 긍정적인 말도 여럿 했지만 기사에서 빠졌기 때문에 '가짜 뉴스'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또 "영국이 어떤 방식으로 EU를 떠나든 미국과의 관계는 괜찮을 것이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특유의 '치고 빠지기'식으로 진화를 시도한 셈이다.

영국에서는 트럼프 방문에 맞춰 대대적인 반(反)트럼프 시위가 벌어졌다. 트럼프가 도착한 12일 밤과 13일 낮 런던 시내에서는 수만명이 집결해 '거짓말쟁이' '파시스트' '부끄러운 줄 알아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13일 오전에는 시위대가 트럼프를 기저귀를 찬 어린아이로 묘사한 높이 6m짜리 풍선을 런던 시내 의회 상공에 띄웠다. 풍선을 띄우는 것을 허가하느냐를 두고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사디크 칸 시장은 "평화로운 시위를 할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허가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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