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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Why] 다시 입학원서 쓰는 로스쿨생들… "뱀 머리보다 용 꼬리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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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등 취업 잘 안되는 지방대, 연말이면 30% 이상 재수나 반수

조선일보

2016년 9월 서울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서 열린 ‘법학전문대학원 공동입학설명회’ 모습. 해마다 우수한 학생들이 로스쿨로 몰리지만, 로스쿨생들에게 변호사시험 합격과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뱀의 머리가 아닌 용의 꼬리라도 되겠다’며 리트 시험 준비에 열을 올린다. /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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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6)씨는 올해 초 서울의 한 상위권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했다. 작년까지 서울 소재 한 중위권 로스쿨의 2학년생이었지만, 자퇴 후 새로 시험을 봤다. 그는 "더 나은 조건에서 구직 활동을 할 수 있고, 졸업 후 법조인으로 생활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미 로스쿨에 다닌 기간(2년)에 3년을 더해 총 5년을 로스쿨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는 "지금은 1~2년 돌아가지만, 밑지는 선택은 아닐 것"이라 했다.

2019학년도 로스쿨 입학을 위한 법학 적성 시험(LEET·이하 리트)이 오는 15일 실시된다. 학부 성적과 공인 영어 시험, 면접 등 정성과 정량 요소를 두루 평가한다는 로스쿨 입시라지만 리트 점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올해는 역대 둘째로 많은 1만502명이 지원했다. 응시자 상당수는 로스쿨 재학생이다. 학원가에선 "리트 시험을 앞두고 제일 바쁜 건 현역"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미 한 차례 경쟁을 뚫고 로스쿨에 합격한 이들이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로스쿨 입시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름방학이 더 바쁜 로스쿨생들

지난 10일 서울의 한 로스쿨 입시 학원. 리트 시험을 앞두고 언어 이해, 추리 논증 등 영역별로 '족집게 강의'가 한창인데 수강생 100여 명 중 상당수는 로스쿨 1학년 재학생이었다. 서울 지역 한 로스쿨에 재학 중인 최모(25)씨는 "6월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리트 시험을 준비하면서 하루 10시간씩 강행군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초에도 사설 기관이 주최하는 전국 단위 모의고사 시험에 응시했다. 그가 재학 중인 학교에선 "1학년의 절반 이상이 리트 시험을 신청했다"고 한다. 일단 시험에 응시해보고, 점수가 잘 나오면 상향 지원하는 분위기다.

지방대 로스쿨 학생들은 상경(上京)도 마다하지 않는다. 리트 시험 때까지 서울 강남과 신림동 등 학원가 주변에 머물며 한 달 넘게 시험을 준비하는 식이다. 영남권의 한 로스쿨에 재학 중인 이모(25)씨는 지난달 말 동기와 함께 서울에 80만원짜리 단기 월세방을 구했다. 매일 아침 9시면 실제 시험 시간표에 맞춰 약 4시간 동안 모의고사 문제를 풀고, 동영상 강의와 기출 문제 분석 자료를 공유한다. 이씨는 "지방대에서 서울 중위권으로, 다시 상위권으로 3년에 걸쳐 로스쿨 입시에 매달리는 선배도 여럿 봤다"고 했다.

학원가 관계자들은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저조한 일부 지방대 로스쿨은 연말이면 30% 이상이 반수나 재수 등을 이유로 이탈한다"고 했다. 일부 로스쿨은 재학생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고육지책을 내놓는다. 리트 시험이 있는 날 학교 행사나 졸업과 관련된 자격시험을 잡는 식이다. 결석자는 다음 학기 학내 장학금 지원 자격을 박탈하는 등 벌칙을 준다.

"뱀의 머리 아닌 용의 꼬리라도…"

지방대 로스쿨생은 서울행을, 서울권 로스쿨생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로스쿨'을 목표로 리트 시험을 다시 보고 두 번째 입학원서를 낸다. 고려대와 연세대 로스쿨에서도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재수하는 학생들이 있다. 최고 2000만원에 이르는 1년 등록금을 기회비용으로 치르면서까지 학교를 옮기는 것은 취업 때문이다. "명문대 로스쿨에 가면 차원이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고 학생들은 말한다.

학벌 편중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한 로스쿨이지만, 지난 10년간 상위권 학교 쏠림 현상이 더 심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가장 선호하는 진로로 알려진 검사나 대법원 재판연구원(로클러크), 대형 로펌 변호사는 상위권 로스쿨을 졸업해야 수월해진다. 올해 새로 임용된 검사 47명 중 SKY 로스쿨 출신은 19명(40.4%), 로클러크 56명 중에서도 SKY 출신이 14명(25%)에 달했다. 로스쿨 졸업생이 처음 검사로 임용된 2012년 후 임명된 검사 310명 가운데 SKY 로스쿨 출신은 144명(46.5%)이었다. SKY 로스쿨에선 매년 100명 가까이가 대형 로펌에 취직하지만, 지방 로스쿨은 한 명도 보내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일부 로펌은 아예 상위권 학교에서만 따로 채용 설명회를 연다. "상당수 로펌 인턴이나 알짜라고 하는 사내 변호사 자리도 명문대 로스쿨에 한정해 추천 채용이 진행된다"는 얘기도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소외된 다른 로스쿨 학생들은 "뱀의 머리가 아닌 용의 꼬리라도 되겠다"며 다시 입학원서를 내민다.

'학점 세탁'을 위해 재수를 택하는 로스쿨생도 있다. 대다수 로펌이 1학년 성적을 기준으로 인턴을 선발하고, 이들 중 절반 이상을 입도선매(컨펌)한다. 검사와 로클러크 선발 때도 학점은 주요한 평가 잣대 중 하나다. 법학 공부 특성상 절대적 공부량이 중요한데, 1학년 때 시험을 망친 이들이 "1~2년 더 투자하더라도 남들보다 유리한 처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며 재수하고 학적을 옮긴다.

빈약한 네트워크와 취업 역량 등 일부 로스쿨의 낙후한 인프라도 로스쿨 재학생들이 재수에 나서는 원인으로 꼽힌다. 4월 법무부가 공개한 로스쿨별 변호사 시험 누적 합격률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위권이 아주대·인하대를 빼면 모두 서울에 있는 학교였다. SKY 로스쿨은 90%대 합격률을 기록했지만, 최하위권을 기록한 원광대(62.6%) 등 지방대 로스쿨 10여 곳은 70% 안팎의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최근엔 이런 양극화가 더 심화되는 추세다. 올해 1월 실시된 제7회 변호사 시험에서 SKY 로스쿨은 70%대 합격률을 보인 반면 원광대(24.63%) 등 3곳은 30%도 넘지 못했다. 해마다 우수한 학생들이 재수를 이유로 이탈하고, 학교 측은 결원으로 골머리를 앓는 일이 반복된다. "지방대 로스쿨의 고사(枯死)가 머지않았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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