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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특파원 리포트] '3國3色' 외교장관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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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하원 도쿄특파원


지난 8일 일본 도쿄 시내 롯폰기 근처의 외무성 이이쿠라(飯倉) 공관. 이틀간 평양 방문 후 동해를 건넌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상과 나란히 기자들 앞에 섰다. 이번 3국 외교장관 회의 주최자인 고노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유창한 영어로 북한 비핵화를 강조하며 "일본이 앞으로도 핵심적인 역할(major role)을 하겠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일본 소외를 뜻하는 '재팬 패싱'이 유행하는 것을 의식한 말이었다. 고노는 폼페이오 방북 직후, 도쿄에서 한·미·일 장관 회의를 개최해 체면을 세운 데 대해 안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납치 문제 해결을 바탕으로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희망한다는 언급도 나왔다.

고노 왼편의 폼페이오는 자신의 세 번째 방북이 '완전 실패'라는 비판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 몹시 신경 쓰이는 듯했다. "북한은 비핵화가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비판가들은 업적을 축소하려 한다", "언론이 너무 관심을 가지면 일을 할 수 없다"는 불평도 했다. 북한이 7일 미국을 '강도(强盜) 같다'고 한 데 대해 반박도 했지만, 대체로 '북이 약속을 지키며 잘하고 있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강력한 약속을 했다. 그 의지를 믿는다"고 말한 장면에서는 100㎏이 넘는 거구의 폼페이오가 순진하게 보였다. 아주 잠깐이지만 북한 대변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나마 안도했던 것은 대북 제재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대목에서였다. 김 위원장이 만나주지 않은 데 대해선 "(면담을) 꼭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하러 갔다"고 했지만 섭섭함이 묻어 있었다. 지난 100일간 세 차례 방북으로 북한과 한배를 탄 그의 운명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강경화 장관도 이 기회를 빌려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 기자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한·미(韓美) 연합훈련 중지는 북의 신속한 비핵화를 위한 것이다. 한·미 군사동맹이 변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한·미 동맹 이상 무(無)'를 강조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본인 납치 관련 질문이 나오자, "한국인도 북한에 피랍, 억류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해당 사항이 있다"고 한 것은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이 '인권 문제는 나중에'를 합창하는 상황에서 다소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유엔에서 인권문제를 주로 다뤘던 그가 앞으로 납북자 문제로 청와대와 맞설 생각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도쿄 한복판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견은 현 국면에서 세 나라 외교 수장(首長)의 최고 관심사와 고민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하원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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