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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79] 저주의 정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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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뒤뜰 장독대에 올려놓고 두 손 모아 빌던 물이 ‘깨끗하고 차가운 정한수(淨寒水)’가 아니라 ‘부정 타지 않은 우물물, 정화수(井華水)’란다. 나는 벌써 10년 넘게 정화수 한 사발 떠놓고 저주의 기도를 올렸다.

출산율이 정녕 1.0 아래로 떨어져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아서 말이다. 정화수는 본디 잘되라고 빌 때 떠놓는 물이니 나는 어쩌면 무당이 귀신에게 바치는 '비난수'를 떠놓고 빈 꼴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2000년대 초에 이미 1.30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여전히 산아 제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2005년에 드디어 1.08을 기록하자 화들짝 놀라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하나는 외로워요'로 바꾸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사실 2004년 출산율 1.16과 2005년 1.08의 차이는 불과 0.08이다. 하지만 중간에 있는 영(0) 때문에 느낌이 확 달랐다. 드디어 소수점 아래 출산율은 충격 차원이 다를 것이다.

나는 이런 충격파를 예측하며 2005년 3월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제목의 저출산·고령화 관련 책을 냈다. 지금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는데 출판사에서 주제는 그대로 두되 부제를 '잃어버린 13년'으로 하잔다. 13년 전 내 제안이 지금도 고스란히 유효하단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어마어마한 돈을 쓰면서 연신 헛발질만 계속했다.

문제는 속도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데 프랑스는 115년이 걸렸지만 우리는 불과 18년밖에 안 걸렸다.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정년 제도를 폐지하고 실질적 임금 피크제를 마련해야 한다. 여성 인력과 이민자를 활용하는 획기적 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교육 문제가 해결돼야 모든 실마리가 풀린다. 저출산·고령화는 인구 문제다. 여기에 제4차 산업혁명과 청년 일자리 문제까지 뒤엉켰다. 단발성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각도의 인구 통계 분석에 바탕을 둔 통섭적 접근이 필요하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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