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석 스포츠부 기자 |
전 세계에서 몰려든 축구 팬들을 만나는 것은 월드컵 현장 취재의 묘미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선 유독 '붉은 악마'가 보이지 않아 서운했다. 한국 원정 팬들은 소수의 붉은 점으로 관중석에 흩어져 있었다.
4회 연속 월드컵 현지 응원을 왔다는 한 30대 팬을 만났다. 그는 "예전엔 월드컵 원정 응원이 주위 부러움을 사는 멋진 일이었다는데 이젠 대부분 '거기까지 가서 봐야 해?'란 반응이 먼저 나온다. 한국 축구가 그만큼 매력을 잃은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축구'는 한국 스포츠의 대표 상품이었다. 축구를 하는 날이면 온 동네가 들썩였고, A매치를 치르는 경기장은 늘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하지만 이젠 추억의 풍경이 됐다.
2013년 6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취임한 지 3개월 만인 그때 홍명보 감독이 새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브라질월드컵을 불과 1년여 앞두고 출범한 홍명보호(號)는 결국 졸전 끝에 월드컵 본선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정몽규 회장은 "현재의 시련을 거울삼아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 회장은 2016년 협회장 재선에 성공했다. 월드컵으로 가는 과정은 도돌이표 같았다. 러시아월드컵이 열리기 불과 1년 전, 신태용 감독이 사령탑을 새로 맡았다. 이번에도 결과는 본선 조별 리그 탈락이었다. 세계 최강 독일을 꺾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감독 선임과 대표팀 운영 등에선 실패한 4년 전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대표팀 부진이 수년간 이어진 가운데, 더 좋은 축구를 위한 협회의 '뼈를 깎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팬들의 마음이 떠나기 시작했다. A매치 관중이 급감했고 TV 시청률도 떨어졌다. 인기 없는 대표팀에 광고주들이 지갑 열기를 꺼린 결과, 지상파 채널은 '월드컵 특수'는커녕 큰 폭 적자를 떠안게 됐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총수로 있는 HDC(옛 현대산업개발)는 '아이파크'란 브랜드로 유명하다. 건설은 물론 최근 유통 관련 사업으로 활발하게 브랜드를 확장하고 있다. 그런 정 회장에게 '대한민국 축구'의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지난 6년 재임 기간 그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정 회장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이유를 묻자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형 이슈가 많았다"고 답했다. 명확한 원인 분석과 대책을 기대했던 기자로선 실망스러웠다.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고민을 해야 한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명장을 데려오는 등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다. 문제를 자신이 아닌 외부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한국 축구의 경영자로서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때다.
[장민석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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