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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1년에 소송 3143건… 난민사건에 몸살앓는 행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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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신청 거부당한 외국인들, '체류 시간끌기' 소송낸 뒤 재판 불참

패소 확정돼도 다시 난민신청 가능… 소송 반복하며 16년째 체류도

지난 4일 오후 2시 서울행정법원 지하 2층 법정. 이날 선고가 예정된 사건 15건 중 11건이 난민 사건이었다. 법무부 산하 출입국·외국인관리청으로부터 난민 신청을 거부당한 외국인들이 소송을 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도 출석하지 않았다. 선고 결과는 모두 원고 패소. 11건 선고하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조선일보

이후 재판이 진행 중인 다른 사건들 변론이 이어졌다. 14건 중 6건이 난민 사건이었다. 이 재판은 선고와 달리 소송 당사자가 직접 출석해 자기 주장을 펴야 한다. 그런데 "집권당이 바뀌고 나서 탄압당하고 있다"며 난민 신청을 한 몽골인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시리아 접경지역에 살고 있어 폭격 위험이 있다"는 요르단인도 안 나왔다. 두 번째 불출석이다. 그가 한 달 내로 '재판 기일을 정해달라'는 신청을 내지 않으면 법에 따라 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간주된다. "빚을 갚지 못해 채권자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며 난민 신청을 낸 카자흐스탄인은 이날 세 번째로 불출석했다. 그의 소송은 없었던 것으로 됐다. 이들 재판을 위해 출석했던 출입국·외국인관리청 관계자들과 통역인들은 모두 헛걸음을 했다. 재판을 하지 않아도 통역인에게는 출석수당이 지급된다.

이날 난민 재판 17건 중 유일하게 나온 사람은 모로코인이었다. 그는 "이슬람교 수니파였다가 시아파로 개종했는데 수니파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난민 신청 후에도 모로코를 다녀갔다고 한다. 출입국·외국인관리청이 그 기록을 제시했지만 그는 반박하지 못했다.

요즘 서울행정법원은 이런 난민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행정법원은 본래 조세 부과나 산업재해 인정 등 행정기관 처분이 정당한지를 다투는 곳이다. 그런데 지난해 전체 사건 1만870건 중 난민 사건이 3143건이었다.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다. 4년 전 296건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었다.

문제는 대부분 한국에 머무르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가짜 난민' 사건이 많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해 난민 신청 사건 중 받아들여진 것은 6건(0.19%)에 불과했다. 난민법에 따르면 총 5단계 심사가 가능하다. 출입국관리청에 난민 신청을 했다 거부당하면 난민위원회에 이의 신청을 하고, 그것도 안 되면 소송할 수 있다. 소송은 3심까지 가능하다. 이때까지 '난민 신청자' 자격으로 체류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지능적으로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다. 두 번 불출석한 후 재판 기일 지정 신청 만기(1개월)를 하루 이틀 앞두고 법원에 신청서를 내는 식이다. 행정법원 관계자는 "절박한 이유로 난민을 신청했다고는 볼 수 없는 행태"라며 "브로커가 개입했을 소지가 크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패소 판결이 확정돼도 다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이를 막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똑같은 소송을 내면서 10년 넘게 머무르는 사람도 있다. 2002년 입국한 한 코트디부아르인은 2005년에 난민 신청을 해 2011년 패소 확정판결을 받았는데 똑같은 이유로 다시 난민 신청을 해 2014년 다시 패소가 확정됐다. 그는 이듬해 3차 난민 신청을 했고 현재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재판에 나와서도 '박해받고 있다'는 주장만 할 뿐 증거를 내놓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래서 판사들이 진짜 난민을 가려내기 위해 직접 해당 국가의 정치 상황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판사는 "간혹 재판이 끝나면 '한국에 머물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며 "난민 재판을 하다 '반(反)난민 정서'가 생길 지경"이라고 했다.

행정법원 안팎에선 난민 재판이 '사법 낭비'라는 우려가 나온다. 판사들이 가짜 난민들의 주장을 일일이 확인하느라 진짜 난민을 놓치기도 하고 다른 사건에도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행정법원 관계자는 "난민 신청을 빌미로 장기 체류를 가능하게 하는 법 제도를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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