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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화장 안했다고 뭐라는 직장, 독박육아 당연시 하는 사회… 이제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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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여성들] [下]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

"여성 임원·장관 몇명 기용하고 유리천장 깨졌다고 주장 말아야" "온라인의 '○○녀' 표현 제재를"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 여성 6만여명(주최 측 추산·경찰 추산 1만9000명)이 모였다. 여성 대상 몰래카메라(몰카) 범죄를 근절해달라며 열린 3번째 집회다. 5~6월 집회에 이어 이번에도 참가자는 대부분 20~30대 여성들이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날 주최 측이 준비한 역할극에서 '페미(페미니즘) 대통령'이라고 적힌 어깨띠를 두른 여성이 등장했다. 상대 배역의 여성은 "문재인 사죄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몰래카메라 범죄의 경우 남성 피의자 처벌이 더 강력하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를 비판한 것이다.

문 대통령, 남자 판사 등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참석자들은 "재기해"를 외쳤다.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한국 남성을 비판할 때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처럼 자살하라'고 쓰는 표현이다. 주최 측은 "문제를 제기(提起)하고, 역량을 모아 다시 일어서자는 재기(再起)"라고 했다.

정부가 대학·대형마트·지하철 화장실 몰카를 단속하고 인터넷에서 불법 영상물을 차단하겠다고 했지만 집회에 참석한 여성들은 "일회성 정책"이라고 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비공개로 집회 현장을 다녀온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썼다. 그러자 일부 여성들은 "여성 경찰 확대 등 실질적인 조치는 왜 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댓글을 달았다.

취재팀은 1~3차 집회에 참석했던 여성 30명을 만나 요구 사항을 들어봤다. 몰카 문제로 집회를 열었지만 여성들의 요구는 다양했다. 낙태죄 폐지 등 논란이 큰 정책부터 직장과 가정의 남성 중심 문화를 바꿔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여성 혐오 분위기 사라져야"

1~3차 집회에 모두 참석했다는 직장인 김재윤(32)씨는 "극소수의 여성들을 구색 맞춤으로 발탁해 유리천장이 깨졌다고 주장하는 정부·기업 인사 방침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자연(28)씨는 "성폭력 피해를 당해 경찰서를 찾았는데 나를 탓하는 듯한 경찰관의 말투에 큰 상처를 받았다"며 "성범죄에 대한 수사기관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최다혜(22)씨는 "낙태죄 청원인 수가 20만명이 넘었는데 대통령은 연예인한테 축하 글이나 남기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며 "정부가 여성 문제를 진지하게 봐달라"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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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퍼진 여성 혐오, 성차별적 용어를 뿌리 뽑아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유치원생 아들을 둔 직장인 박수경(34)씨는 "아이가 어느 날 '×이루'(여성 성기와 안녕이라는 뜻의 영어 '하이'를 결합한 단어)라는 단어를 써서 충격을 받았다"며 "포털사이트 등 온라인에서 여성 혐오 단어가 안 쓰이게 단속해달라"고 했다. 대학생 장모(22)씨는 "일반인 여성 사진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놓고 '맛있겠네요' 같은 성희롱 댓글을 다는 것을 법적으로 막아달라"고 말했다.

◇직장·가정 남성 중심 문화 바꿔달라

7일 집회에 참석한 최모(25)씨는 "5일 내내 야근하느라 화장을 못 했는데 '어디 아프냐' '화장은 이제 포기했느냐'는 말을 하루에 열 번씩 남자들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최씨는 "화장을 하든 옷을 입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26)씨도 "짧은 치마를 입고 회사에 가면 남자 동료가 '남자 만나러 가느냐'고 농담하는 게 예삿일"이라고 말했다.

가정 문화를 바꿔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두 살과 다섯 살짜리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 최영진(36)씨는 "아이가 열이 나도, 넘어져도, 졸려서 울어도 '모든 책임은 엄마에게 있다'고 몰아가서는 안 된다"며 "여성 혼자 육아를 책임지는 '독박 육아'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직장인 최모(37)씨는 "명절 끝나고 출근하면 '집에서 전 부치느라 고생했다'고 자랑하는 남자 동료·상사들이 많은데 자기 집 차례 준비의 반(半)은 하고 으스댔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획취재팀〉

김수경 기자·박상현 기자·양승주 기자·김은경 기자·조유미 기자·황지윤 기자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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