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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일사일언] 德에 취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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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원열 번역가 겸 뮤지션


흔히 한국은 음주에 관대한 나라라고들 한다. 늦도록 여는 술집, 24시간 동안 영업하는 식당과 편의점이 흔한 서울은 술을 마시려고만 들면 거의 언제나 취할 수 있는 곳이긴 하다. 술꾼들은 만취해서 겪었던 난처하고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들을 무용담처럼 주고받는다.

비록 살아본 적은 없지만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카지마 라모의 소설 '오늘 밤 모든 바에서'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얼마나 술독에 빠져들기 쉬운 사회를 만들어 놓았는지 통렬히 비판하며 "알코올 중독을 양산하는 형이하학적 주범은 정부다. 범죄자에게 범죄자를 체포할 자격은 없다"고 일갈한다. 이 글쟁이 주인공은 알코올 및 약물 중독에 대한 온갖 문헌을 찾아 읽으며 매일 밤 지식과 알코올을 탐식하다 결국 간이 망가져 병원 신세를 진다.

라모는 위 소설에서 마약 중독자로 유명했던 비트 세대 작가 윌리엄 S. 버로스는 대표작 '네이키드 런치'를 쓴 기억이 없다고 했다. 정말일까? 장편소설 한 편을 쓴 사실 자체를 기억조차 못한다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몇 년 전의 사소한 오역 한두 건을 계속해서 떠올리며 수백 번을 괴로워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다. 술은 좋아하지만 마약이란 건 구경해 본 적도 없고, 워낙 악필이라 술에 취했다가 뭔가 메모를 끄적여도 다음 날 술이 깨면 나 스스로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이키드 런치'에 몇 번 도전해 보았지만 맨정신으로도 해독해내기 어려운 소설이었으니, 버로스는 어쩌면 정말로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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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보들레르는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하라"는 시를 남겼다. 어째 취하기 쉬운 순서대로 나열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쉽게 술을 잔뜩 마실 수 있었던 걸까? 힘들겠지만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은 술은 멀리하고 늘 덕에, 가끔은 시에 취해 있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건배.





[이원열 번역가 겸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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