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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중요한 국제회의는, 왜 전부 싱가포르에서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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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E 강국의 비결]

40년 계획 세워 준비한 이 나라… 지리적 장점에 완벽한 인프라, 작년 국제행사만 877회

조선일보

싱가포르=김경필 특파원


지난달 27일 응엥헨 싱가포르 국방장관은 앞서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한 가지 사실을 털어놨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1993년 중국-대만 당국자 간 회담이건, 2015년 시진핑-마잉주 회담이건, 최근의 트럼프-김정은 회담이건 간에 우리가 먼저 싱가포르를 회담장으로 삼으라고 권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당사국들이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먼저 요청했다는 이야기였다.

미·북 회담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은 물론 스위스, 스웨덴, 태국, 인도네시아, 몽골 등이 움직였지만, 정작 개최지로 낙점된 장소는 유치전에 나서지도 않았던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는 미·북 회담 개최를 위한 경호·경비와 교통 통제, 북한 대표단 숙박비 지원 등으로 1630만싱가포르달러(약 133억원)를 부담했다. 하지만 회담 관계자와 각국 취재진 등 4000여 명이 싱가포르를 찾아와 돈을 썼고, 싱가포르는 회담 준비부터 개최까지 한 달에 가까운 기간 '싱가포르'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알렸다. 글로벌 미디어 정보 분석 업체인 멜트워터는 이번에 싱가포르가 거둔 홍보 효과가 7억6700만싱가포르달러(약 6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국제협회연합(UIA)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지난해 국제행사를 877차례 개최해 벨기에 브뤼셀(763회), 서울(688회), 일본 도쿄(269회) 등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외국인은 1742만명에 달했다. 싱가포르 인구(561만명)의 3배가 넘고, 세계적인 관광대국인 태국 관광객 수 3538만명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들이 싱가포르에서 쓰고 간 돈은 268억싱가포르달러(약 22조2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는 국제 행사와 기업 회의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이른바 'MICE(Meetings, Incen tives, Conventions and Exhibitions:기업 회의·포상 관광·국제회의·전시)' 방문객들이 포함돼 있다. 싱가포르는 어떻게 해서 세계적인 MICE(마이스) 산업국가가 됐을까?

편리한 교통·기업 하기 좋은 환경

싱가포르는 지리적 이점을 타고났다. 세계 물동량의 20% 이상이 지나는 전략 요충지인 믈라카 해협의 동쪽 입구를 차지하고 있다. 또 인구 6억4000만명, GDP(국내총생산) 2조5500억달러(약 2848조3500억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 동남아시아의 한가운데에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태국 방콕, 베트남 호찌민, 미얀마 양곤 등 동남아 최대 도시들이 항공편으로 2시간 이내 거리에 있다.

여기에 싱가포르만의 각별한 노력이 더해졌다. 싱가포르는 도심에 있던 파야레바 국제공항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1975년 싱가포르 섬 동쪽 끝에 신공항 건설을 시작했다. 13억싱가포르달러(약 1조700억원)가 들어간 대형 건설 프로젝트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창이공항은 1981년 개항하자마자 동남아 최대 공항이 됐다. 싱가포르는 이후 30여 년 동안 창이공항의 인프라와 서비스 개선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더 쏟아붓고, 공항과 도심을 자동차 전용도로와 MRT(지하철)를 통해 곧바로 연결시켜 창이공항을 세계적인 공항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창이공항을 찾은 외국인들은 한 시간 내에 모든 입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을 출발해 30분이면 도심에 도착할 수 있다. 동남아 각국 지사에 있던 임직원들이 각자 아침 항공편으로 출발해 점심때 한곳에 모여 회의를 하고, 당일 저녁에 각자 체류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동남아에서는 싱가포르에서만 가능하다.

도시 자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특히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기 위한 노력도 싱가포르를 세계 최고의 MICE 산업국가로 만들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세계은행의 '기업 하기 좋은 나라' 평가에서는 뉴질랜드에 이어 세계 2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는 스위스·미국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법인세율은 아일랜드(12.5%) 다음으로 낮은 17%다. 자연히 글로벌 기업들이 싱가포르로 몰려들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위원회에 따르면, 3만7400여 다국적기업이 싱가포르에 본사나 지역총괄본부를 두고 있다.

MICE 1등 만든 싱가포르 '40년 대계'

싱가포르는 일찍이 정부 차원에서 MICE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왔다. MICE라는 개념을 만들고, 이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한 것도 싱가포르였다. MICE 산업 육성을 전담하는 '싱가포르 전시·컨벤션국(SECB)'이 싱가포르관광청(STB) 산하에 처음으로 문을 연 것은 44년 전인 1974년의 일이었다. 전시·컨벤션국은 세계 20여 국에 사무실을 두고 기업 회의 및 각종 국제행사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난 2004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의 유행으로 경제 위축을 경험하자 MICE 산업 육성에 더욱 힘을 쏟았다. 싱가포르 정부는 MICE 방문객들이 쓰고 가는 돈이 일반 관광객의 2.5배에 이른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곧바로 2015년까지 MICE 산업에서 세계 1위가 되겠다는 '관광 2015' 계획을 내놨다. 이 계획에 따라 오늘날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객실 2561실 규모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12만㎡(3만6300평) 규모의 샌즈 엑스포·컨벤션 센터, 초대형 식물원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등 대형 시설물이 도심인 '마리나 베이' 일대에 집중적으로 건설됐다. 2008년에는 인기 모터 스포츠 경기인 '포뮬러 원(F1)'의 그랑프리 경기를 유치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런 집중적인 투자로 싱가포르를 찾은 외국인의 수는 2005년 894만명에서 2015년 1523만명으로 10년 만에 70% 늘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어 2020년까지 MICE 산업 분야 세계 1위를 굳히겠다며 민간 기업들과 함께 'MICE 2020' 계획을 내놨다. 싱가포르를 찾는 기업 방문객들이 싱가포르 내 어디서나 업무를 볼 수 있게 무료 무선 인터넷망을 확충하고, MICE 전문 기업을 육성하고, 관광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려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 싱가포르를 잊을 수 없게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싱가포르=김경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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