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자동차 마케팅의 세계
유튜브·SNS로 예고편부터 노출
스토리에 녹아들어 홍보 효과적
현대차 ‘앤트맨과 와스프’ 협업
벨로스터·싼타페 등 PPL로 등장
보안 위해 스위트룸 비밀 회동도
자동차는 가전이나 다른 소비재와 달리 영화나 드라마의 스토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간접광고 효과가 뛰어나다. 사진은 앤트맨 제작사와 현대차가 함께 만든 포스터. [사진 현대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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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를 태운 채 질주하는 이 불꽃 차량은 바로 현대차 ‘벨로스터’다.
이 장면 이외에도 가택 연금됐던 남자 주인공 스캇 랭(폴 러드 역)의 집 앞에서 딸 캐시와 엄마 메기가 탑승하는 진한 회색 차량에도 ‘H’ 로고가 선명한데 현대차의 소형 SUV ‘코나’다. 스캇 랭을 태우고 개미처럼 작아진 채 질주하다 비둘기들의 부리에 쪼일 위기에 처하면서 아슬아슬 질주하는 차는 현대차의 ‘뉴 싼타페’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스파이더맨’ ‘어벤저스’처럼 수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를 주로 제작해온 미국의 마블이 세계 시장을 겨냥해 내놓는 기대작이다. 영화 팬들 사이에 마블의 작품은 단순한 영상물을 넘어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가 이런 마블의 작품에 대거 등장하는 이유는 간접광고(PPL) 효과 때문이다. 판매 신장을 위한 수단으로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봉하는 영화만큼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은 드물다. 현대차 글로벌마케팅2팀의 임준형 부장은 “자동차는 스마트폰·TV 같은 전자제품이나 다른 소비재와 달리 영화 속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높아 스토리 라인에 깊이 녹아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야기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제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서 거부감 없게 전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영화는 개봉 수개월 전 예고편 등장 단계부터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국경을 초월해 회자된다.
지난 6일 전 세계에 개봉한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현대차 벨로스터가 질주하는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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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드라마의 PPL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긴 쉽지 않다. 문의 전화 등으로 간접 체크할 뿐이다. ‘태양의 후예’의 경우 송중기가 투싼을 타고 등장한 장면이 나온 다음날 현대차 전시장에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송중기가 탄 차 이름이 뭐냐” “송중기가 탄 차의 색상 이름이 뭐냐” 등과 같은 문의가 많았다. 현대차 측은 부랴부랴 ‘아라 블루’(일종의 파랑색 계열) 투싼을 전국 전시장에 긴급 공수했다. 이후 이 차의 이름은 ‘송중기 차’로 굳어지는 효과를 누렸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도 조승우가 아직 출시되지 않은 신형 그랜저를 운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대차 로고를 본 시청자들로부터 “무슨 차냐”는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영화나 드라마도 스토리가 사전에 절대 유출돼선 안 되는 일종의 ‘보안 상품’이다 보니 PPL 협업단계부터 유별나게 일을 한다. 이번에 현대차는 마블과 첫 미팅 때부터 미국 내 모 호텔에 스위트룸을 잡아 놓고 비밀 회동하듯 회의를 진행했다.
영화 제작 일정에 신형 차량 개발 일정을 맞추려다 보면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마블은 현대차 측에 제작 일정을 설명하면서 6주 이내에 벨로스터와 신형 싼타페를 미국 조지아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현대차는 국내외 연구소에 모두 수소문해 테스트 중이던 차량을 긴급 수배했다. 마침 모하비 사막에서 막 내구성 테스트를 마친 차량이 섭외돼 급파하고, 일부 차량은 여러 시험용 차량의 부품들을 분해해 온전한 차 한대로 재결합한 뒤 보냈다. 한창 촬영 중이던 마블에서 “차량 안전장치가 너무 잘 작동해 스턴트 장면을 촬영할 수가 없다”는 연락이 와 안전용 전자장치를 작동 중단시키려 엔지니어를 급파하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의 영화·드라마 PPL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광고 예산에서 PPL이 차지하는 비중이 4~5년 전만해도 1%였으나 최근엔 5% 이상으로 늘어났다. 마케팅 효과가 뛰어나다 보니 경쟁도 치열해졌다. PPL은 제작진의 제작비 보조 수단이어서 5년 전만 해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유명 작가의 작품이나 빅스타가 출연하는 작품에는 입찰 경쟁이 벌어질 정도다. 메이커 중심이 아닌 제작자 중심이 되면서 단가도 높아지고 있다.
해외 유명 자동차 브랜드들도 영화·드라마 PPL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렉서스는 최근 스포티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마블사의 ‘블랙 팬서’에 스포츠카 PPL을 집행해 큰 효과를 거뒀다.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는 ‘쥬라기 공원’에서 M-Class를 처음 소개했고 아우디 TT, BMW i8 컨셉카 등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을 통해 전 세계에 처음 소개됐다.
현대차 임준형 부장은 “PPL은 작품 내용과 차량 특성이 잘 연결돼야 효과가 크다”며 “앤트맨은 수퍼히어로 중에서도 친근한 캐릭터이고 영화 주제도 가족애라는 점에서 친근한 패밀리카를 추구하는 현대차의 컨셉을 잘 알려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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