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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아직도 검찰 조서만 ‘증거’…이중조사 가능성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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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불씨 남긴 수사권 조정안

증거능력 여부 국회에 맡기기로

특수사건 검찰에 직접 수사권

봐주기·보복 수사 가능성 남겨

자치경찰제도 수사권 범위 논란


정부가 지난 21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했지만 모호한 규정이 많아 향후 새로운 검경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경을 오가며 같은 내용을 두 번 조사받아야 하는 불편함도 크게 해소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 경찰·검찰 왔다갔다 이중조사 ‘여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왜 국민이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 경찰과 검찰에서 두 번 조사를 받아야 하는지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조정안에서는 ‘피의자 신문조서 증거능력’에 대해 다루지 않으면서 수사권 조정은 반쪽짜리가 됐다.

경찰이 피의자를 상대로 조사한 신문조서는 검찰이 작성한 신문조서와 달리 법적 증거로서 완전한 효력을 갖지 못한다. 이 때문에 경찰이 1차 수사를 마친 후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면, ‘기소기관’인 검찰이 다시 재판의 증거가 될 신문을 똑같이 반복한다. 같은 조사가 이중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동안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중조사’를 막는 것은 물론, 자백 위주의 수사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검찰이든 경찰이든 모든 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조정안에서 이를 제외했다. ‘법정에서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는 사법부인 법원과 관련된 사항이므로 행정부가 나서기보다는 입법부인 국회에 맡기는 편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를 두고 검경 내부에선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가 다수다. 현재 국회에는 수사기관이 작성한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고 피의자의 반론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 개혁 포인트 ‘삐끗’, 검경 갈등 ‘불씨’만

검찰에 경제·금융·공직자범죄 등 특수사건에 대한 ‘직접적 수사권’을 부여한 부분도 논란거리다. 검찰이 ‘봐주기·보복 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은 분야들이 대부분 특수사건이기 때문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2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 ‘고위공직자 사건’은 나중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만들어 해결한다고 치더라도, 나머지 특수사건들은 지금과 똑같이 검찰이 직접 수사하기 때문에 아무 변화가 없다”며 “시민들이 줄기차게 외쳤던 개혁의 포인트는 검찰의 권력남용을 해결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정작 이 부분에 답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힘을 분산시키기에는 이번 조정안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검경이 동일한 특수사건을 중복수사할 때 검찰이 우선적 수사권을 갖게 한 부분도 갈등의 ‘불씨’가 될 소지가 높다. 한 경찰 관계자는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한 부분만 무 자르듯 뚝 잘라 넘기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 안에 시범 실시하겠다고 밝힌 자치경찰제 역시 갈 길이 멀다. 정부는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화되는 경찰의 권한을 자치경찰제 도입을 통해 견제하려 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자치경찰에 부여되는 수사권의 범위다. 일단 자치경찰은 비수사 분야인 지역 생활안전, 경비, 교통 등의 업무를 맡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방자치단체 측은 지역 경찰이 일반 범죄 수사도 다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치경찰에 수사권이 제한적으로 부여되면 국가경찰의 ‘보조 역할’로 전락해 결국 방범대 수준에 그칠 것이란 지적도 있다. 반면 일선 수사 경찰들은 “부산에서 사람 죽이고 서울 가서 잡히는 범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지역 경찰에 맡길 수 있겠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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