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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책과 삶]도둑의 눈에 비친도시·건물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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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도시 가이드

제프 마노 지음·김주양 옮김

열림원 | 352쪽 | 1만5000원

경향신문

평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집에 방문하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문을 열고 들어가서 방이 몇 개나 있는지, 인테리어를 어떻게 했는지 정도를 살펴볼 것이다. 그 집을 털고 싶어하는 도둑은 평범한 방문객보다 집에 대해 훨씬 입체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도둑은 방의 개수보다는 타고 들어갈 만한 가스배관이나 굴뚝은 있는지, 몰래 숨어있거나 도주할 만한 지하실 등에 관심을 가진다. 몰래 땅을 파고 들어갈 만큼 집 주변의 흙이 부드러운지를 알아보기 위해 토양의 상태를 조사해볼 수도 있다.

<도둑의 도시 가이드>는 도둑, 경찰, 건물관리인, 보안전문가 등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뉴욕타임스 등 매체에 건축과 범죄에 관한 글을 써온 블로거인 저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훔치려는 자’ 도둑과 ‘지키려는 자’ 경찰이 힘겨루기해온 역사를 들여다봤다. 1986년 한 무리의 은행털이범들이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은행의 할리우드 지점에서 250만달러가 넘게 재물을 훔쳤다. 이들은 흙의 종류와 지하 수도 연결 상태 등을 치밀하게 조사한 후 약 84.95㎥의 흙을 파내서 땅굴을 만들어 은행 안에 들어왔다. 로스앤젤레스의 도둑들은 한 주택을 털기 위해서 그와 연결된 세 주택의 벽을 뚫어서 침입로를 만들었다. LA경찰청은 도둑들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경찰 헬기 순찰대를 두고 주기적으로 항공순찰을 한다. 저자는 “침입절도는 개인 공간과 인간 존엄이라는 개념 자체를 공격하는 끔찍한 범죄”라며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때로는 “도둑이 도시를 더 잘 이용”한다고 말한다. 도둑들은 규칙을 어기고 재물을 훔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 깊숙한 곳에 숨겨진 공간적 가능성의 우주”를 펼쳐놓는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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