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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어린이책]동화 ‘빨간 두건’의 반전 패러디…소녀와 새끼늑대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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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

매튜 고델 지음·그림 |비룡소 | 56쪽 | 1만2000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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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빨간 두건’은 여러 가지 판본으로 변주돼 전해진다. 대략적으로는 빨간 두건 쓴 소녀가 할머니 집으로 가던 도중 늑대를 만나고, 늑대는 할머니 집으로 먼저 달려가 할머니를 잡아먹은 뒤 할머니인 척 위장해 소녀를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순진무구한 소녀와 음흉한 늑대의 대립이 이야기의 뼈대다. 소녀와 늑대가 공존할 만한 여지는 전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는 ‘빨간 두건’ 이야기를 패러디한다. 눈이 내리던 날, 빨간 두건을 쓴 소녀는 학교가 끝난 후 귀갓길에 나선다. 한 무리의 사납게 생긴 늑대들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맨다. 시간이 갈수록 눈발은 더욱 거세진다. 새끼 늑대 한 마리가 뒤로 처지고, 소녀도 쏟아지는 눈에 당황한다. 겁에 질린 소녀와 새끼 늑대가 만난다. 소녀는 자신을 경계하는 새끼 늑대를 안아준다. 어디선가 멀리서 늑대 무리의 울부짖음이 들려오고, 소녀는 새끼 늑대를 가족에게 돌려주기 위해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향한다.

눈은 그치지 않고, 온갖 동물들이 소녀와 새끼 늑대를 위협한다. 소녀도 무섭지만, 자신보다 더 약하고 작은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각기 다른 종에 속하는 소녀와 새끼 늑대 사이엔 모종의 유대감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어둑한 눈밭에서 소녀와 어미 늑대가 마주친다. 소녀와 늑대는 두려움과 반가움이 섞인 시선으로 상대를 직시한다.

경향신문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엔 대사나 지문이 없다. 늑대의 울음소리나 소녀의 거친 숨소리 같은 의성어만 나온다. 하지만 선 굵고 명쾌한 내러티브 덕에 이해가 수월하다. 특히 그림 구성은 잘 만든 영화의 콘티를 보는 듯하다. 원경과 클로즈업을 적절한 순간에 배치해 감정을 고조시키고, 소녀와 늑대 무리의 움직임을 교차해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유지한다. 소녀와 어미 늑대가 만나는 순간의 긴장감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원제는 ‘눈 속의 늑대’(Wolf in the Snow)인데, 한국판은 소녀의 용기와 공감능력에 초점을 맞춰 제목을 바꾼 듯하다. 책 커버를 벗겨내면 나오는 앞표지와 뒤표지는 에필로그와 프롤로그 같은 역할을 한다. 미국 내 출간된 그림책 중 최고작에 수여되는 2018 칼데콧 대상을 수상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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