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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개명 기념 ‘마초파티’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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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할아버지가 지어준 내 이름

여성에 강요하는 미덕 연상돼

동의하지 않는 가치가 들어간

내 이름이 원망스러웠다

“바꾸면 되죠, 왜 안 바꿔요?”

내 선택, 내가 책임질 수 있다면

이름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My name, My choice’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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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런,홀로!?

나의 이름, 나의 선택

손원평 작가의 소설 <서른의 반격>에는 주인공의 이름과 관련된 일화가 나옵니다. 육십년대 초에 태어나 배말숙이라는 이름을 지닌 주인공의 어머니가 뱃속에 있는 딸의 이름을 추봉이로 지으라는 시아버지의 엄한 요구 앞에 며칠을 눈물로 지새우며 결사반대하는 내용인데요. 하필 배말숙의 남편은 삼대독자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하는 사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고추봉이 아니라 김추봉인 게 어디냐”는 발언을 아무 고민 없이 뱉을 정도로 무심하죠. 소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딸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말숙이 어떻게 배제되는지, 발랄하지만 담백하게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그땐 그랬지” 하며 넘어갈 장면이겠지만, 저는 이 대목에서 좀처럼 책장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남 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부모님이 고심해서 지어놓은 이름을 두고, 오직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할아버지가 고집한 이름으로 이십몇 년을 살았거든요. 엄한 아버지에게 맞설 자신이 없던 아빠, 장남과 결혼했는데 아이를 늦게 가진데다 그 아이가 ‘심지어 딸’이라 시아버지 말을 거스를 권한이 없던 엄마. 결정적으로, 아직 태어나기 전이었으므로 작명 과정에서 조금의 목소리도 낼 수 없었던 저. 우리 모두 사정이 있었기에, 저는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울 미, 참 진을 쓰는 ‘미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이름이 싫었던 이유

그 사정을 알 리 없건만, 희한하게 저 역시 어릴 때부터 제 이름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어요. 너무 성의 없이 지은 촌스러운 이름 같았거든요. 뜻이 ‘빤’하잖아요.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미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름다울 미, 참 진 자 쓰지?’라고 대번에 그 뜻을 맞혔는데, 그게 그렇게 싫었습니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 미진은 그다지 이상하거나 별날 것 없는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이름 주인이 싫어하는 이름이라면 그걸로 땡 아니겠어요?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이름의 덕목이야 다르겠지만, 적어도 제 기준에서 ‘미진’은 전혀 좋은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자라면서 스스로를 알아갈수록 그 생각은 더 강해졌지요. 제 이름을 싫어하는 이유도 좀더 고차원적으로 진화했습니다. 어릴 때는 단순히 촌스럽고 성의 없는 이름이라서 싫어했다면, 자랄수록 제 이름 안에서 여성에게 강요하는 특정한 미덕(이를테면 ‘참한 여자’ 같은)이 읽히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이 싫었어요. 내가 동의한 적 없는 가치들이 듬뿍 담긴 이름을 볼 때마다, 내 이름을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0대의 저는 엄마에게 대뜸 따지고 들었습니다. “엄마는 내 이름을 대체 왜 이렇게 지었어? 촌스럽게. 성의도 없고.” 의미 없는 소리를 한다며 나무랄 줄 알았던 박 여사가 의외로 제 말에 맞장구를 치더라고요. “원래 네 이름으로 지어놓은 건 따로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딸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대뜸 미진이 아니면 미란이 중에 고르라고 하는 거야. 그때는 그 뜻을 꺾을 수가 없었어. 그래도 미란이보다는 미진이가 낫지 않니?”

원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름이지만, 탄생 배경을 듣고 나니 제 이름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럼 엄마 아빠가 원래 지어주려고 했던 이름은 뭐야?” 박 여사가 씨익 웃었습니다. “보현 아니면 선재. 화엄경에 나오는 보현보살과 선재동자 이름을 딴 건데, 둘 중 하나로 지으려고 했지. 너 낳아보고 둘 중 좀더 어울리는 이름으로.” 저는 선재라는 이름이 유독 마음에 들었습니다. 선재라는 이름의 어감도, 어린 구도자 선재동자의 이야기도, 이름만 듣고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는 점도 모두 마음에 쏙 들었어요. 거울을 보고 이선재라고 불러보았는데, 제 원래 이름보다 제게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게 끝이었어요. 거울을 보고 몇 번 이선재라고 불러보는 것 정도가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그때는 별수 없었어요. 개명처럼 커다란 결정을 저 스스로 내릴 수 있다는 감각이 당시 제게는 전혀 없었거든요. 개명은 이름이 김삼순, 이개똥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어요.(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개명 절차가 훨씬 까다로웠다고 하니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저를 가장 망설이게 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그냥 살자’라는 내면의 속삭임과 “그래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라는 주위의 속삭임이었어요. 지금의 저야 그런 말을 들으면 “그래서 뭐”라고 되물을 것 같습니다만, 그때의 저는 ‘그래, 그냥 살자’ 쪽에 가까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미 나를 미진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름이 바뀌었다고 알리는 것도 무척 귀찮을 것 같았고요.

그 후로도 가끔씩 이선재라는 이름을 떠올리곤 했지만, 20대 초중반을 정신없이 보내며 깊게 생각할 기회는 많이 갖지 못했습니다. 대학을 다니고 졸업 뒤의 진로를 고민하다가, 덜컥 취업을 했죠. 취업까지 하고 나니, 인생에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타이밍은 다 지나가버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지금 생각하니 무척 귀여운 착각처럼 보이지만, 그때는 진지했어요.) ‘미진’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해버린 게 조금 서글프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회인이 되어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돈을 벌고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 제 삶 하나는 오롯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 가장 뿌듯했지요.

제가 제 삶을 책임질 수 있게 되자 무언가 선택할 자유 역시 늘었습니다. 첫 직장에서 2년차가 되던 때, 저는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해 독립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의 선택에 따라 삶의 모양이 생각보다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진하게 체감했어요. 비로소 산다는 것의 효능감을 느낀 기분이었달까요. 곧이어 저는 고양이 두 마리를 가족으로 맞았고, 그 역시 독립 못지않게 제게는 큰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제가 내린 선택이므로, 그 선택에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 비용이나 부담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오히려 제가 더 잘 살아야 하는, 더 잘 살고 싶은 이유이자 동력이 되어주었지요.

그 과정에서 제가 배운 것이 몇 개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내 인생과 관련된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남의 선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 좋아하기 때문에 그걸 굳이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훌륭한 사람씩이나 될 필요는 없고,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마음의 변화에 따라, 이름을 바꾸겠다는 결심의 계기도 덜컥 찾아왔습니다. 5월의 어느 날,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이야기 나누던 도중, 그가 갑자기 “아, 맞다. 저 이름을 바꾸기로 했어요”라고 담담히 말을 한 겁니다. “와, 축하드려요! 그런데 왜요?”라고 묻자 그는 “그냥 제 원래 이름이 자기 몫을 다했대요”라고 답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데 갑자기 저도 모르게 “저도 이름을 바꾸고 싶어요”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던 두 동료는 순수한 얼굴로 “바꾸면 되지요. 왜 안 바꿔요”라고 물었고, 저는 그제야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그러게. 이렇게 계속 싫어하고 투덜댈 거라면, 지금이라도 안 바꿀 이유가 뭐지?’

조금 싱겁지만 그날을 계기로 가족에게 개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제 결심이 단단한 것을 눈치챈 건지 가족도 크게 반대하지 않더라고요. 처음에 박 여사는 심란해 보였지만, 결국 제가 선재라는 이름을 갖기로 결정을 내리고 나서는 오히려 무척 기뻐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이런 말까지 하더라고요. “내가 지어주려던 이름이니까.” 이건 비밀이지만, 저는 ‘이선재’라는 이름을, 다른 누가 아닌 제가 저에게 지어준 이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박 여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아니 오히려 좋아서 거기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이름, 바꾸면 되지요

이름을 바꾸겠다고 알린 뒤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를 받았습니다. 축하를 받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지요. ‘나는 지금 무얼 축하받고 있는 걸까?’ 글쎄요. 그건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겠어요. 고심 끝에 내 마음을 따라 내린 선택이라면, 그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선택에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 그리 외롭고 힘들지만은 않다는 것.

너무 더워지기 전에, 제게 순수한 얼굴로 ‘이름, 바꾸면 되지요. 왜 안 바꿔요?’라고 물었던 동료들과 함께 개명 파티를 열기로 했습니다. ‘My name, My choice’(마이 네임, 마이 초이스=내 이름 내 선택)라는 뜻을 담아 ‘마초 파티'로 이름을 지었답니다. 저는 제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길을 내고, 그 여정에 함께할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제 삶의 많은 것들을 주어진 조건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디자인하고, 저와 어울리는 것들로 바꿔나가려고 합니다.

아, ‘나의 선택’이라는 말은 얼마나 두렵고 또 동시에 얼마나 벅찬 말인가요.

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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