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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VIEW POINT] 脫원전 국가들 예외없이 전기요금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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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부는 '탈(脫)원전'을 하면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주장한다. 박근혜정부에서 복지 확대 필요성을 외치면서도 세금을 더 걷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항변하던 것과 데자뷔를 이룬다. 탈원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최근 전기요금 인상 논란이 이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논란과 너무도 꼭 닮은 이유다.

탈원전이 전기요금 인상을 초래할 것인지는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처럼 한국보다 먼저 탈원전을 했던 국가들 사례를 보면 전기요금이 일제히 상승한 것으로 확인된다. 탈원전은 값싼 원자력발전을 줄이고, 비싼 액화천연가스(LNG)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독일은 2002년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하고, 2011년 노후 원전 8기 가동을 중단했다.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2010년 MWh당 244유로에서 2015년 295유로로 21% 상승했다. 같은 기간 산업용 전기요금도 25% 올랐다. 일본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을 멈추면서 5년간 전기요금이 가정용은 19%, 산업용은 29% 껑충 뛰었다. 일본은 전기요금이 급상승하자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화석연료 수입이 늘면서 무역적자가 쌓이자 결국 원전 재가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1990년 탈원전에 들어간 이탈리아 역시 2000년부터 10년간 전기요금이 40% 올랐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이 차례차례 준공되면서 2023년까지 원전 설비가 증가하기 때문에 문재인정부가 끝나는 2022년까지는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공언한다. 이어 정부는 2022년 이후에도 "요금 인상 폭이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추정은 연료비와 물가 변동이 없다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연료비와 물가는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변수에서 제외했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계만을 갖고 소득주도성장을 정당화하려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과거 13년간 한국의 전기요금은 연료비와 물가 요인을 뺄 경우 13.9% 올랐다. 그러나 연료비와 물가를 모두 고려하면 상승률은 68%에 달한다. 한국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2.0%로 보고 있다. 매년 2%씩 물가가 오른다고 할 때 2030년 전기요금은 물가 요인으로만 30% 가까이 뛰게 돼 있다.

정부는 이미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에 착수했다. 값싼 심야시간 요금을 올리고, 비싼 낮시간 요금을 내려 전체적으로 최대한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지 인상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업들이 절반 이상을 심야 전기로 쓰고 있는 데다 낮시간 요금이 심야시간 요금보다 비싸게 책정돼 있는 한 기업 부담이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민간 연구기관과 관련 업계, 심지어 탈원전을 찬성하는 쪽에서도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국민 분노를 걱정해 쉬쉬할 게 아니라 오히려 요금 인상을 공론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탈원전에 따라 월평균 전기요금을 1만5000원가량 더 부담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미세먼지가 악화하면서 국민 사이에 친환경 에너지라면 일정 부분 요금 인상을 감내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영향으로 보인다.

이제 정부가 할 일은 숫자 장난으로 국민 눈을 흐리는 게 아니라 요금 인상 필요성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동안 전기요금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전력 과소비를 초래한 부분까지 이번 기회에 바로잡는다면 금상첨화가 될 수도 있다.

[경제부 = 고재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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