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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내란·연쇄살인 수사에 검찰은 손도 못댄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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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조정 합의 후폭풍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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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정부가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대해 검찰과 경찰 양쪽에서 "곳곳에 미흡한 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2일 매일경제의 취재에 따르면 "국회에서 법안을 만들고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 검경과 학계 등이 논의해야 할 사항이 많아 실제 도입까지 험난한 절차가 예상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합의문에 따르면 검찰은 앞으로 내란, 연쇄살인 등 사건을 수사할 수 없게 된다. 1차 직접수사가 가능한 사건을 특정 분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한 재경지검 부장검사는 "이제 검찰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같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공안사건을 직접 수사할 수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현 정부 기조대로 공안부의 역할은 점점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검사는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면 검찰과 경찰이 합동수사단을 꾸려 공동 대응했지만 앞으로는 오롯이 경찰만 수사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합의문에는 경찰이 수사를 미흡하게 하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보완수사 요구를 거부할 경우 검찰이 직무 배제나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지만, 검찰 안팎에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다.

21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국가공무원법상 거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 검찰이 경찰에 대한 징계요구권을 가지고 있었을 때에도 경찰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국 1만여 명 규모의 특별사법경찰(특사경)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도 남은 과제다. 특사경은 관할 검사장이 지명하는 일반직 공무원이 조세, 마약, 환경, 위생 등 특정 직무 범위 내에서 단속, 조사, 송치 등 사실상 경찰업무를 수행하는 제도다. 인지사건 수사를 주로 하는 특사경이 경찰과 마찬가지로 자체적으로 수사종결권을 갖게 되면 '봐주기 수사' 등 부작용이 클 것이란 우려가 많다.

합의안을 앞세운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한 부장검사는 "사실상 청와대와 총리실이 주도한 정부안을 만드는 데 부처 간 협약으로 진행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합의문에 대해 검경 모두가 반발할 것을 의식해 청와대는 한발 물러서고 국회로 공을 던진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정부가 전날 발표한 합의문은 법안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합의문'일 뿐"이라며 "앞으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이를 법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조문 하나하나를 검경이 맞붙어 조율하는 지난한 다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대통령 공약을 이행한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정작 국회에서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킬 때 이를 책임지고 주도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경찰 측 전문가들은 강제 수사의 핵심인 영장청구(체포·압수수색) 권한을 여전히 검찰이 보유한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권 확보 등은 사실상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살인 등 강력범죄에 대해선 영장신청 후 송치에 필요한 보완수사만 경찰에 요청했다"며 기존에도 일반사건 수사는 경찰이 맡아왔던 점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검찰 수사지휘권은 폐지하게 됐지만, 검찰이 영장청구 과정에서는 경찰에 (수사자료 등을) 요청할 수밖에 없어 수사지휘권 폐지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수사종결권을 확보한 경찰이 사건을 자체적으로 불기소 처분해 부실수사를 확산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있다.

정세종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앤다는 취지가 아니기 때문에 한 곳에서 비리를 은폐하면 다른 곳에서 다시 수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며 "검경이 상호 견제하는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적인 취지"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불기소 처분하기로 한 사건에 대해 고발인이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 절차의 부작용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승환 교수는 "경찰이 1차 수사를 종결한 것을 고소인이 경찰서장에게 이의를 신청해야만 자신들의 의견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국민 권익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며 "피해자 입장에서 절차가 늘어난 것 말고 이득이 있나 싶고, 경찰이 1차로 수사 종결한 것을 재수사한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찰이 수사를 빨리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국 재수사하면 불안정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라며 "경찰이 최종 수사를 종결한 것을 검찰이 다시 수사하는 어정쩡한 타협안이 만들어졌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현정 기자 / 박대의 기자 / 수습기자 =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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