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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천국으로 가기 전 떠올려보세요, 당신의 삶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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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終 피정' 여는 최성균 신부… 관에 들어가보기 등 '웰다잉 교육' "잘못 뉘우치고 준비할 수 있어야" 그동안 代洗 준 어르신만 2만명

뚜껑이 덮이자 암흑과 적막이었다. 관(棺) 속이다. 주님의 기도(주기도문)를 외는 최성균(67) 신부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리면서 묘한 공명을 일으켰다. 관 속은 비좁지만 의외로 편안하고 평화롭다. 1분쯤 후 뚜껑을 연 최 신부가 물었다. "어때요? 편안하죠?"

20일 서울 종로구 성모노인쉼터에서 만난 최 신부는 '죽음과 함께하는 사제'다. 그는 매주 화·토요일 이곳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선종(善終) 피정'을 연다. '웰다잉 교육'의 천주교 버전. 참가자들은 최 신부로부터 천주교 교리로 본 죽음에 관한 강의를 듣고 첫 수업에서 관에 들어가는 체험을 한다. 최 신부는 "무섭다고 도망가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각보다 참 편하네요. 나의 마지막 잠자리가…'라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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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노인쉼터엔 관(棺)과 해골 모형이 비치돼 있다. 최성균 신부는 “평소 죽음을 준비하자는 뜻”이라며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보여드릴 것은 기도, 극기, 자선을 얼마나 실천했는지밖에 없다”고 했다. /성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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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신부의 정식 직함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인요양시설·요양병원 전담사제다. 요양병원 200여 곳을 발로 뛰며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조건부 세례인 '대세(代洗)'를 준 어르신이 2만명이다. 병자성사를 한 인원도 2000명에 이른다.

노인 문제를 전담하게 된 계기는 2001년 서울 종로성당 주임사제로 부임하면서다. 성당 인근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에 어르신이 넘쳐났다. 식사를 대접하고 용돈을 챙겨드리는 노인복지 사목을 시작했다. 서울대교구 노인대학연합회 회장, 노인복지위원장, 보건복지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기관장도 잇달아 맡게 됐다.

2007년부터는 요양병원을 찾아나섰다. "우리 할아버지도 천국 가게 해주세요"라는 한 할머니 신자의 호소 때문이다. 요양병원 환자들은 아무 준비 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 신부가 베푸는 세례식은 일반 세례식과는 다르다. 일반 성당의 세례는 가족과 교우들 축하 속에 성대히 열리지만, 최 신부의 세례는 약과 변 냄새 진동하는 병실에서 환자가 누운 채 이뤄진다. 세례를 원하는 환자를 찾아 "어르신, 이제 그동안 잘못한 거 다 뉘우치고 하느님께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십시오"라고 권한다. 신자인 경우는 마지막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드리고 예수의 몸인 성체(밀가루떡)를 잘게 쪼개 입안에 넣어준다. 천국 가는 길을 예수님과 함께한다는 '노자(路資) 성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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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침 봉사가 있는 20일 쉼터를 찾은 할머니 신자가 수지침을 꽂은 채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성형주 기자


그가 최근 펴낸 '아직 천국을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다'(가톨릭출판사)에는 지난 10년간 요양병원을 순례하며 만났던 다양한 죽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병실을 찾은 신부의 손바닥에 '모' '니' '카'라고 자신의 세례명을 적은 할머니, 음식을 삼킬 수 없는 상태임에도 성체를 받아 모시려고 입을 벌리는 할아버지, 대세를 받고 1분도 안 돼 임종한 경우…. 마지막 순간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편안하게 임종하는 모습은 때로 성스럽게 느껴진다.

2014년 '선종 피정'을 시작한 건 준비 없는 죽음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생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고, 불확실한 것은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라며 "항상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피정을 통해 천국 가는 길을 준비해서인지 쉼터를 다녀가신 분들은 비교적 오래 고통받지 않고 편안히 가시는 편"이라고 했다.

항상 죽음과 마주하며 살고 있는 최 신부는 매일 잠들기 전 1만2000명씩 고인(故人)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올린다. 쉼터를 다녀간 고인과 요양병원에서 대세를 받고 임종한 환자들, 종합병원에서 나온 부음 명단 등 그가 지닌 고인의 명단은 86만명. 그는 "은퇴 후에도 노인사목을 자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적 번민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사제관엔 성모상과 그림이 10여점이나 있었다. "항상 눈을 뜨면 성모님이 보입니다. 그렇게 힘을 얻습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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