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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북한에서 실시된 지방선거 실제 모습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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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북한-21] 이번 지방선거에서 사전투표율이 20.14%로 집계됐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로 역대 두 번째로 사전투표율이 높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주말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사전투표소에는 유권자들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으로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국가에서 국민이 국정에 참여하는 구체적인 주권 행사 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선거를 통해 국민은 주권행사와 함께 자신의 의견을 표출함으로써 정치 지도자들을 선택하고, 그들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선거는 민주주의국가뿐만 아니라 독재국가에서도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이용된다. 다만 선거 제도와 방법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반영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독재자들은 선거를 정당성 확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2015년 7월에 실시된 북한의 지방선거가 대표적이다. 당시 김정은 집권 이후 처음 열린 지방선거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북한은 과거와 다름없이 99.97%의 선거율과 100% 찬성이라는 해괴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보통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수치다.

북한헌법을 보면 주권 행사와 투표법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헌법 제1장 제6조에는 "군 인민회의로부터 최고인민회의에 이르기까지 각급 주권기관은 일반적, 평등적, 직접적 원칙에 의하여 비밀투표로 선거한다"로 명시돼 있다. 현실은 어떨까?

우선 북한에서 선거는 의무다. 정당한 사유와 근거 없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징계 대상이 된다. 단순한 경범죄가 아니라 정치적 범죄로 엄중하게 처벌받는다. 또 선택이나 반대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투표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정부에 대한 지지행위가 된다. 투표 참여라는 행위만으로 '월경'이라는 큰 죄를 사면받은 경우도 있다.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1990년대 후반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북한 주민들은 대거 탈북했다. 운 좋게 한국으로 들어 온 탈북민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은 중국에 체류했다. 2003년 8월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열리자 중국에 살고 있던 북한 주민 중 일부가 투표를 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비록 배가 고파 국경을 넘긴 했어도 어려서부터 세뇌당한 정치적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김정일은 그들의 탈북 행위를 관대히 용서해 주라고 했다. 처벌받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조국을 찾아와 투표를 감행한 눈물겨운 충성심을 높이 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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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참여한 평양여대생들 /사진=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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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제작 방영된 북한 영화 '명줄'도 비슷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김일성의 항일투쟁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에서 주인공 진석은 큰 과오를 범하고 체포돼 사령부로 호송되는 처지에 놓였다. 도중에 우연히 적들을 만나 전투가 벌어져 호송하던 전우들마저 잃고 혼자 살아남게 된 진석은 이미 범한 과오는 물론이고, 오해까지 받을 수 있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동요하지 않고 홀로 사령부를 찾아 떠난다.

영화 엔딩 신이 당시 탈북민들에게 보내는 북한 당국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끝마무리와 달리 눈물겨운 충성도 한 번으로 족했던 것 같다. 외부 세계를 경험했던 북한 주민 대부분은 다시 탈북했고, 두 번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북한에서 선거는 100% 찬성 투표다. 대의원으로 선출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간부다. 일부 노동자나 농민이 뽑히기도 하지만, 그들도 자기 계급 의견을 대변하기보다는 그들의 직업이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에 대의원으로 선출된다. 간부든 일반인이든 대의원이라 해도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대의원증을 들고 내리는 행위뿐이다.

북한에서도 선거에서 반대표가 나온 적이 있었다. 2003년 진행된 지방선거에서 일부 반대표가 나왔다. 으슥한 곳에 자리 잡은 담벼락과 건물 벽면에는 "선거를 타도하자"와 같은 부정적인 내용의 낙서가 남아 있는 게 발견됐다. 해당 지역 정권기관과 보위기관은 발칵 뒤집혔다. 그들은 이 사건이 국가 전복을 꾀하는 파괴암해분자들의 악랄한 책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반대표는 한두 개에 불과했고 극히 적은 일부 지역 일이었다.

서너 명만 함께 모여도 점심 메뉴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북한 당국은 수천만의 유권자가 모두 똑같이 찬성표를 행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유엔에 가입된 북한의 정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민주주의와 인민, 공화국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사전적 의미로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위장해 선전하고 있다. 선거 역시 자신들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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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도, 시, 군 대의원선거장 /사진=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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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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