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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유레카 모멘트`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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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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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4차 산업혁명 탐구-11] 기원전 3세기경 시칠리아섬에서 태어난 그리스의 수학자로 아르키메데스란 사람이 있었지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고 아마도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웠을 겁니다. 부력의 원리이지요.

하루는 왕이 어디서 금관을 구했는데, 그게 순금이 아니고 은이 섞였다는 소문을 들게 됩니다. 그래서 아르키메데스에게 그것을 감정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는 목욕탕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벌거벗은 채로 뛰쳐나와 "유레카"라고 외칩니다. 유레카는 그리스어로 '발견했다'는 뜻이지요. 순금인지 아닌지를 발견한 게 아니라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겁니다.

이 일화에서 '유레카모멘트'라는 말이 탄생합니다. 즉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을 유레카모멘트라고 합니다. 만약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유레카모멘트를 많이 경험한다면 너무 신나는 일 아닐까요? 창의적인 생각이 마구 샘솟듯 할 테니까요. 직장 상사에게 받은 골치 아픈 과제가 일순간에 풀릴 수도 있고, 논문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고, 갑자기 큰돈을 벌 사업 구상이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이 유레카모멘트입니다.

그럼 이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유레카모멘트를 만들 수 있느냐? 아르키메데스처럼 목욕탕에 들어가면 그런 순간이 찾아 오느냐? 나는 매일 목욕탕에 들어가 10분 동안 몸을 담그는데도 한번도 그런 순간이 오지 않는데 어떻게 된 거냐? 결론부터 말하면 사람마다 유레카모멘트를 만들기 적합한 환경이 있다는 겁니다. 그걸 제대로 알아내기 힘들다는 게 문제이지요.

누구는 4B를 얘기합니다. 첫 번째 B는 Bath. 즉 목욕 중일 때. 두 번째 B는 Bus. 굳이 버스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타고 이동할 때. 세 번째 B는 Bed. 잠잘 때. 그리고 네 번째 B는 Bar. 식사 중이나 술 한잔 마실 때. 누가 저에게 "당신의 유레카모멘트는 주로 언제 오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산책할 때라고 답할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저녁 늦은 시간 산책을 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생각나거든요.

이런 걸 뇌과학자들이 요새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단 유레카모멘트가 왔을 때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를 관찰합니다. 뇌라는 게 1.5㎏ 정도 되는 고깃덩어리입니다. 푹신한 스펀지 같습니다. 여기에 무수히 많은 신경세포가 있는데 10¹² 정도 된다고들 하지요. 그것들이 뇌의 여러 부분에 다들 자리 잡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대뇌, 소뇌 등등. 그리고 그 신경세포가 시냅스로 연결돼 있습니다. 이걸 우리는 신경망이라고 하지요. 일종의 회로이고 네트워크입니다.

그런데 뇌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뇌신경세포끼리 네트워크할 때 유레카모멘트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연관이 없는 영역에서 융합이 일어나면 그게 창의적일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 않나요. 과학과 인문이 결합하는 등 학문 간 융합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데 있을지 모릅니다.

제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을 때 9·11테러가 터졌습니다. 참 끔찍한 사건이었고, 그 사건을 취재하는 것도 끔찍했습니다. 이 9·11테러가 발생한 지 442일이 지난 2002년 11월 27일. 미국은 테러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한 초당파적 위원회를 구성합니다. 그로부터 603일이 지난 2004년 7월 22일 사건의 전말을 밝힌 567쪽의 보고서가 발표되지요. 250만쪽의 관련 서류를 분석하고, 1200명을 인터뷰하고, 19일간의 청문회와 160명의 공개 진술을 들어 작성된 보고서였습니다. 9·11테러를 전후해 벌어진 일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뒤 뭐가 잘못돼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분석과 처방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 이유가 저로서는 전혀 상상조차 못한 거였습니다. 점(點)을 선(線)으로 잇지(connecting the dots) 못하는 국가 시스템이 주범이라는 겁니다. 테러를 예고한 조각 조각들의 정보는 무수히 많았는데 이를 연결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창의성이 발휘되지 않았고 상상력이 막혔다는 겁니다. 그게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놓은 국가개조 방향은 '공유(share)'에 방점이 있었습니다.

만약 국가안보 책임자가 아르키메데스처럼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머릿속에 입력된 그 여러 가지 정보들을 생각하다가 돌연 "유레카" 하고 소리치고 뛰어나갔더라면, 아마 9·11테러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지나친 비약일까요?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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