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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김해숙 “위안부 고통 깊이 표현하려 ‘배우 김해숙’ 없애자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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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터뷰] 영화 ‘허스토리’의 배정길 역 김해숙

일본군 위안부 ‘관부재판’ 실화바탕

“44년 연기인생서 가장 힘든 영화”

영화 끝내고 6개월간 우울증 겪어

“극장 나설 땐 모두가 ‘동지’될 것”


한겨레

영화 `허스토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배정길역을 맡은 배우 김해숙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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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44년 연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영화였다고 했다. 감히, 내가 이 캐릭터를 이해하고 촬영했노라 말하는 것조차 교만한 듯 여겨졌다고 했다. 한 장면 한 장면, 촬영할 때마다 탈진해 무너지는 스스로를 기도하며 추슬렀다고 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할 할머니들의 신산한 삶의 무게를 오롯이 표현하기에 자신의 그릇이 너무 작은가 수없이 되뇌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법정투쟁 중 유일하게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낸 ‘관부재판’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 개봉(27일)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배우 김해숙(63)은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워했다. 영화에서 ‘말 못할 비밀’을 간직한 채 긴 세월 인고의 삶을 살아낸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을 맡은 그는 “생각 끝에 그 고통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배우 김해숙, 인간 김해숙을 아예 없애버리자고 결심했다. 촬영은 나를 버리고 또 버리는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극 중 배정길은 역사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생존’했고, 기나긴 법정투쟁을 거치며 점차 성장하고 단단하게 심지를 다져나가는 인물이잖아요? 저 역시 이건 할머니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여성의 이야기라는 걸 깨달아가며 조금씩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아요.” 할머니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목소리에 물기가 배어 나와 인터뷰가 끊겼다. “영화를 끝내고도 6개월 가까이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고백에서 말로는 다 담지 못한 그의 마음이 전해졌다.

영화에는 김해숙뿐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로 문희, 예수정, 이용녀,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소송단 단장 역 김희애까지 관록의 여배우들이 함께한다. 한쪽으로 영화의 무게중심이 쏠리지 않을 만큼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 낸 데는 이들의 연기 내공이 큰 역할을 했다. “모두가 한마음이었기에 한 신, 한 신 마칠 때마다 감동해서 박수치고 고생했다고 위로하며 촬영했어요. 배우이기 전에 여자라 동지애도 많이 느꼈고요. 베테랑 배우들답게 감정의 끈을 놓지 않으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였죠. 수백 편의 작품을 했지만, 가장 조용하고 가장 경건하며 가장 멋진 촬영장이었다고 할까요?”

사실 지금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는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지난해에는 <아이 캔 스피크>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고, 주연을 맡은 배우 나문희가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쓸며 화제의 중심에 선 바 있다. “나문희 선생님은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굉장히 존경하는 분이에요. <아이 캔 스피크>가 정말 보고 싶어 아이피티브이(IPTV)를 눌렀다 취소하기를 몇 번이나 했죠. 그런데, 보면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아 꾹 참았어요.” 그는 지금까지 나온 위안부 영화가 ‘과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은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이제 그 아픈 역사는 다들 알잖아요. 이 영화는 그분들의 ‘용기’가 합쳐져 이뤄낸 작은 승리인 ‘관부재판’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현재’의 관점에서 그려내요. 이 싸움이 왜 끝나지 않은 싸움인지, 왜 우리가 이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지 알려줄 영화죠.”

그는 이번 만큼은 ‘관객 욕심’을 내고 싶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사람이 봤으면 싶어요. 천만을 이야기하면 뭇매를 맞을지도 모르지만.(웃음) 교육적 효과도 크니 온 가족이 함께 보시길 권해요. 아마 극장을 나설 땐 모두가 ‘동지’가 돼 있을 겁니다. 그런 마음이 생존자 할머니들에게도, 또 하늘에 계신 할머니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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