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꼽은 ‘난중일기’
‘서울대 벤처 1호’ 창업한 교수 출신 기업가, 산업기술보호협회장 재임 중
‘내일’ 없는 충무공 자세, 기업가들 배워야… 안주 말고 도전하는 자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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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충무공 이순신의 삶을 보면 언제나 내일이 없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준비에 매일 자신의 삶을 쏟아붓지요. 현대의 ‘경제 전쟁’을 치르는 우리 기업가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충무공의 ‘생즉사 사즉생’(살기를 도모하는 사람은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다) 각오가 필요합니다.”
21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학교 1공학관에서 만난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일을 함에 있어서 죽기를 각오했던 충무공의 삶을 귀감 삼아 우리 기업가들도 현재에 최선과 책임을 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교수는 ‘서울대 1호 벤처’ 에스엔유(080000)프리시젼을 창업한 기업가다. 1998년 서울대 교수로 재임하면서 학내 실험실을 통해 회사를 창업, 글로벌 디스플레이 장비기업으로 일군 경험이 있다. 당시 교수 출신 벤처 창업이 드물었던 만큼 박 교수의 행보는 경제계에 큰 신선함을 줬다. 에스엔유프리시젼은 2005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했고 ‘무역의날’ 수출 7000만불탑 수상도 했을 정도로 사세도 커졌다. 이후 박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과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창업생태계와 기업가정신에 대해 사회 곳곳에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해왔다.
박 교수가 선택한 책은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다. 충무공이 임진왜란때 진중에서 쓴 일기로,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면서 결연하게 풀어냈다. 박 교수는 “난중일기는 내게 정신적 귀감이 되는 책”이라며 “책에 나온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의 마음이 창업에 도전한 기업가들의 마음과 너무나 닮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난중일기에서 충무공에게 ‘내일’이란 없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오늘’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박 교수는 이같은 충무공의 모습이 기업을 운영하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업을 해본 기업가라면 충무공의 마음을 백분 이해할 수밖에 없다”며 “큰 계약을 따내고 사업을 성공시키는, 일련의 경영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실수는 수백명의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기업가들도 현대의 ‘경제 전쟁터’에 있다는 생각으로 경영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죽음을 각오하고 전선에 선 충무공의 심경이야말로 오늘날 기업가라면 반드시 경험해야 할 마음가짐”이라며 “특히 우리나라처럼 오너 체제가 많은 경제 구조에선 경영자들은 모든 책임을 진다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충무공의 모습에서 기업가정신을 찾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암울한 현실에 포기하지 않고 거북선 등 새로운 무기와 전략으로 도전을 펼치는 자세야 말로 현대의 기업가정신에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내 중소기업들도 세상에 안주하지 말고 힘들지만 글로벌 시장에 나가서 자꾸 도전하고 부딪혀봐야 한다”며 “이를 통해 글로벌 경쟁에서 어떤 점이 필요하고 부족한 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고 충무공처럼 새로운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충무공은 ‘지행일치’(知行一致)의 인물이다. 아는 것을 실행에 옮기는 용기를 지녔다. 난중일기를 보면 같은 정보를 갖고도 전장에서 도망가는 장수가 있는가 하면, 이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으로 활용하는 장수도 나온다. 충무공은 후자다. 박 교수는 이같은 충무공의 지행일치 자세야 말로 기업가가 가져야할 덕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박 교수가 학교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한 배경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실험실에 갇혀있는 지식은 학문이 아니다. 내가 아는 ‘공학’은 학교 밖으로 나와 시장에 도움이 되고 궁극적으론 국가경제에 기여해야한다는 것”이라며 “1998년 외환위기(IMF) 당시 1달러당 2000원까지 가는 상황 속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논문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기술을 갖고 1달러라도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싶어 창업에 도전했다”고 회상했다.
박 교수는 2016년 자신이 창업한 에스엔유프리시젼의 지분 일부와 경영권을 에스에프에이(056190)로 넘겼다. 어렵게 창업해 키운 회사를 남에게 넘기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그는 “회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1위를 하고 히든챔피언으로 큰 만큼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적으로 더 큰 주체가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며 “우리가 만든 기술이 꽃을 피우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음 아프지만 창업자로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사회에서 ‘엘리트’로 속하는 부류들이 충무공의 지행일치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대학생들이 공무원과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몰리는 상황을 보면 개탄스러울 따름”이라며 “우리나라의 엘리트들은 알고 있는 지식을 사회를 위해 어떻게 쓸 것인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결국 창업을 통해 도전하는 것 외에 답이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석박사 창업률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7분의 1 수준으로 현저히 낮은데다 중국 역시 상하이 등 첨단특구에 엘리트들이 모여 기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는데 우리 청년들만 정규직 전환에 시선이 꽂혀 있다”며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결국 청년들에게 기업가정신을 꽃피울 수 있도록 창업 등을 지속적으로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중일기에서 충무공은 임진왜란 승전을 위해 조정에 지속적으로 장계(狀啓·왕에게 전하는 보고서)를 올린다. 하지만 각종 이해관계에 얽힌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충무공에게 필요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때문에 충무공은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모든 전쟁 준비를 해야만 했다. 박 교수는 현재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선 무엇보다 국가의 기업친화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규제샌드박스 만든다고 했지만 기업 현장에선 여전히 규제 강도와 갯수가 더 높다고 한다”며 “창업하고 싶은 분위기를 정부가 조성해주고 이같은 부분들이 개선되면 경제선순환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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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재 서울대 교수는…
△1961년 출생(김포)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학사 △서울대 대학원 기계설계학과 석사 △맨체스터공과대학교 대학원 기계공학과 박사 △서울대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에스엔유프리시젼 창업 △제2대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 단장 △제2대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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